[Cook&Chef = 조서율 기자] 전세계 미식가들이 꼭 가봐야 할 레스토랑으로 꼽아온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Noma)'는 오랫동안 미식계에서 하나의 기준처럼 여겨져 왔다. 북유럽 자연에서 채집한 식재료와 지역 농산물을 기반으로 한 ‘뉴 노르딕 요리’는 세계 파인다이닝 흐름을 바꿨다. 이 흐름을 이끄는 수문장은 바로 '노마'의 창립 셰프 '르네 레드제피(René Redzepi)'였다.
노마는 세계 미식 가이드 World’s 50 Best Restaurants에서 4차례 1위를 기록하고, 미슐랭 3스타를 유지하며 '지난 10년 가장 영향력 있는 레스토랑'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자연에서 채집한 허브와 해조류, 지역 농산물을 정교하게 조합한 요리는 창의성과 기술의 상징처럼 소비돼 왔다.
명성이 클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것일까… 드러난 주방 문화
지난 10일(현지 시간) '더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는 전·현직 직원 35명을 인터뷰한 보도에서, 노마가 세계 최고 레스토랑 반열에 오르던 2009년부터 2017년 사이 주방 내부에서는 위계적인 리더에 의해 폭력이 반복됐다는 증언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레드제피는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에게 주먹을 휘두르거나 벽에 밀치는 등 신체적 폭력을 행사했고, 손님 눈에 띄지 않도록 몸을 낮춘 채 포크 등 주방 도구로 직원의 다리를 찌르며 불만을 드러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공개적인 욕설과 모욕, 외모 비하, 업계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협박 등 심리적 압박이 이어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신체적 폭력과 심리적 학대가 반복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레드제피는 2015년 에세이에서 “나는 오랜 기간 괴롭힘을 해왔다. 소리를 질렀고 사람들을 밀쳤다”며 자신의 문제를 인정한 바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그는 성명을 통해 “모든 세부적인 내용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내 과거 행동이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다는 점을 납득한다”며 “사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이어 레드제피는 노마 총괄 셰프 자리에서 물러났고, 자신이 설립한 식품산업 비영리단체 MAD 이사회에서도 사임했다. 직원들에게 사과하는 영상을 공개하며 공식적으로 퇴장을 알렸다.
한편 레드제피는 애플티비에 2024년 7월 공개된 ‘옴니보어: 인간의 식탁(Omnivore)’에서 내레이션을 맡아 식재료를 통해 인류 식문화를 조명하기도 했다. 또, 애플티비의 대표 인기 드라마 ‘더 베어The Bear’ 시즌 3 1화에서 짧게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노동 환경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식의 가치와 문화를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의 얼굴로 나섰다는 점은 적지 않은 아이러니를 남긴다.
노마는 과거 수십 명의 인턴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아 논란을 빚었다. 이후 유급 인턴제로 전환했지만 노동 환경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24년 정규 영업을 종료한 뒤 현재는 글로벌 팝업과 연구 중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노마 팝업은 1인당 1,500달러라는 높은 가격에도 예약이 빠르게 매진됐다. 그러나 개막을 앞두고 현장 인근에서는 전 직원들과 노동단체 등이 참여한 항의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과거 주방 내 폭력과 노동 환경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해명을 요구하며 레스토랑 운영 방식의 변화를 촉구했다. 이 같은 논란 속에서 일부 스폰서 기업이 협력을 중단하는 등 파장도 이어지고 있다.
노마는 오랫동안 혁신과 창의성의 상징으로 소비돼 왔다. 그 화려한 명성 뒤에 가려져 있던 주방 문화의 민낯을 드러냈다. 세계 최고 레스토랑이라는 타이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미식 산업이 지켜야 할 기준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미식의 ‘미(美)’는 아름다울 미다. 우리는 오랫동안 요리를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나눠왔다. 함께 먹는 행위의 본질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다. 누군가의 눈물과 고통이 ‘미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식탁 위에 오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무엇이 진정한 미식의 가치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따끔한 교훈으로 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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