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정서윤 기자]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람은 종종 빠른 운의 주인공처럼 보인다. 권성준 셰프도 그렇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우승, 예약 폭주, 첫 책 출간, 새로운 공간 준비까지 이어진 흐름만 보면 그의 커리어는 거침없는 상승 곡선처럼 읽힌다. 그러나 그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 성공은 우연한 기세보다 자기 삶의 자원을 치밀하게 배치해온 시간에 가깝다. 권성준은 성공을 좇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성공의 속도에 끌려가지 않는 선택을 해왔다.
그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사람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무기력하게 보냈다는 자각 이후, 권성준은 빈틈을 그냥 두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대학 시절에는 한식·중식·양식·일식부터 제과·제빵, 조주, 커피, 와인, 차까지 조리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고든 램지의 영상을 하루에도 몇 시간씩 보며 기본기와 태도를 익혔고, 요리책을 읽으며 몸으로만 익히는 요리가 아니라 머리로 이해하는 요리를 쌓아갔다. 그에게 공부는 성실함의 장식이 아니라, 앞으로의 선택지를 넓히는 준비였다.
<흑백요리사>에 임하는 방식도 같았다. 그는 대형 요리 서바이벌에 나가면서 요리만 준비하지 않았다. 비슷한 구조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반복해서 보고, 제작자의 입장에서 어떤 미션이 나올지 예측했다. 실제 경연에서 그가 유독 침착해 보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난 된다고 믿으니까”라는 말은 근거 없는 배짱이 아니라, 이미 여러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굴려본 사람의 확신에 가까웠다. 자신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준비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걸, 그는 방송의 한 장면으로 보여줬다.
성공보다 먼저 계산한 것
권성준의 판단력은 우승 이후 더 선명해진다. 상금 3억 원이 생기자 그는 그 돈을 오래 쥐고 있지 않았다. 통장에 여유가 있으면 나태해질 것 같아 가게 근처 전셋집을 구하는 데 바로 썼다고 했다. 보통 성공은 더 큰 소비와 과시를 허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성공이 자신을 느슨하게 만들 가능성을 먼저 차단했다. 돈을 얻은 뒤 무엇을 살 것인가보다, 돈이 자신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먼저 본 셈이다.
예약이 폭주했을 때도 그는 더 많은 손님을 받는 쪽으로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유명세 이후 테이블을 늘리고, 매장을 크게 확장하고, 손님을 더 받는 선택은 가장 쉬운 수익화 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권성준은 퀄리티와 운영 통제를 먼저 봤다. 자신이 직접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면, 식당의 완성도는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인기의 크기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판의 크기를 먼저 따졌다.
이 태도는 카페 실패 이후 더 분명해졌다. 그는 비아 톨레도 파스타바의 성공 이후 카페를 열었지만, 오래 운영하지 않고 접었다. 식당과 카페를 동시에 관리하는 일이 자신의 방식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실패는 후퇴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후 무리한 확장을 경계하게 만든 판단 기준이 됐다. 권성준은 실패를 감정으로만 남기지 않고, 자신의 운영 방식에 필요한 데이터로 바꿨다.
그가 미슐랭 스타에 큰 욕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젊은 셰프에게 미슐랭은 매혹적인 타이틀일 수 있다. 하지만 권성준은 별을 얻기 위해 필요한 외부 활동, 네트워크, 투자 구조, 인력 규모가 자신이 원하는 자유와 맞는지 먼저 따진다. 그는 타이틀이 주는 명예보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식당을 운영할 수 있는 독립성을 더 중시한다. 성공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의 형태를 스스로 고르려는 것이다.
나폴리라는 이름, 자유라는 기준
권성준을 설명할 때 나폴리를 빼놓을 수 없다. ‘나폴리 맛피아’라는 이름은 방송이 만들어준 별명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만든 정체성이다. 비아 톨레도 파스타바 역시 그가 살았던 나폴리의 거리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나폴리는 그에게 유학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던 사람이 다른 삶의 방식과 마주한 장소이며, 편견 없이 다가오는 사람들, 강렬한 음식, 바다와 거리의 에너지를 통해 자신의 감각을 새로 배운 곳이다.
그래서 그의 나폴리는 향수나 장식이 아니다. 권성준에게 나폴리는 자기 방식으로 살 수 있다는 감각이자 기준이다. 그는 가게를 잠시 닫아야 하더라도 매년 나폴리를 찾는다. 당장의 매출보다 경험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선택 역시 단기 수익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요리와 브랜드를 유지하게 만드는 연료가 된다.
그의 요리는 나폴리라는 이름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흑백요리사> 결승전에서 선보인 게국지 파스타처럼, 그는 한국의 기억도 이탈리아 형식 안에 풀어낼 줄 안다. 나폴리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지만, 그 정체성은 고정된 국적이나 지역명이 아니다.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요리로 번역하는 방식에 더 가깝다. 나폴리의 자유로움과 한국의 기억, 이탈리아의 기술과 개인의 이야기가 겹쳐질 때 권성준의 요리는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
그가 레시피를 절대적인 비밀로 보지 않는 것도 흥미롭다. 메뉴는 계속 바뀌고, 감각은 경험 속에서 조정된다. 중요한 것은 정해진 공식이 아니라, 그 공식을 다루는 사람의 기준이다. 그래서 그는 요리를 하려면 언어, 문화, 기후, 지형, 음악, 미술까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레시피만 따라 하는 요리가 아니라, 한 지역과 한 사람의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음식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젊은 오너 셰프의 현실 감각
권성준은 낭만적인 셰프이면서 동시에 냉정한 오너 셰프다. 그는 요식업 경기가 나빠지던 시기에 식당 운영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했고, 다른 직업까지 알아봤다고 했다. 방송 제안을 받은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러니 그의 우승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행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가장 현실적인 위기감 속에서 붙잡은 기회였다.
그는 오너 셰프에게 필요한 것이 요리 실력만은 아니라고 본다. 사회 전반의 흐름을 읽고, 소비자의 반응을 보고, 경기와 가격을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코로나 시기 많은 식당이 가격을 올릴 때도 그는 그 흐름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가격을 유지했다. 이후 경기가 나빠졌을 때 그 판단은 식당이 버틸 수 있는 근거가 됐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과 식당을 지키는 사람은 다르다는 사실을, 그는 꽤 일찍 배운 셈이다.
그렇다고 권성준이 숫자만 보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돈만 바라보면 요리를 못한다고 말한다. 나가는 돈을 줄이는 데만 집중하면 결국 그 부담이 손님에게 전가된다고 본다. 매장으로 큰돈을 벌겠다는 기대보다, 좋은 요리를 손님에게 내고 자신의 요리를 발전시키는 쪽에 더 무게를 둔다. 여기서 그의 현실 감각은 더 흥미로워진다. 그는 돈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돈이 요리를 망치지 않도록 거리를 두려는 사람이다.
최근 새 공간을 준비하는 과정도 그런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건물을 매입했다는 사실만 보면 성공한 젊은 셰프의 자산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권성준에게 공간은 재테크의 대상이기보다 매장 운영과 삶의 구조를 함께 짜는 방식에 가깝다. 아래층에는 식당을 두고, 위층에는 자신이 생활하는 구조를 꿈꿔왔다는 점도 그렇다. 그는 성공을 밖으로 과시하기보다, 자신이 오래 일할 수 있는 판으로 바꾸려 한다.
권성준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그는 야심이 크지만, 외부 타이틀에 자신을 전부 맡기지 않는다. 경쟁을 좋아하지만, 대중의 평가에 자기 색을 잃지 않으려 한다. 성공을 원하지만, 성공 이후의 흔들림까지 계산한다. 젊은 나이에 우승한 셰프가 아니라, 젊은 나이에 성공을 다루는 법까지 배워가는 오너 셰프다.
그래서 권성준은 왜 성공에 휘둘리지 않을까. 답은 의외로 분명하다. 그는 성공을 목적지로 보지 않고, 자신의 방식을 지키기 위한 자원으로 보기 때문이다. 돈, 인기, 타이틀, 공간, 실패, 기회까지 모두 그에게는 자기 판을 정교하게 만들기 위한 재료가 된다. 나폴리 맛피아라는 이름 뒤에 있는 것은 화려한 캐릭터가 아니라, 자기 인생을 영리하게 고르는 사람의 태도다. 권성준의 진짜 성취는 우승 그 자체보다, 우승 이후에도 자기 방식의 속도와 크기를 스스로 정하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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