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과 제철 식재료로 완성한 비채나의 한 상
[Cook&Chef = 김성은 전문기자]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81층에 자리한 비채나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10년 연속 1스타를 받은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다. 높은 층고와 서울 전경으로 먼저 시선을 사로잡지만, 이곳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공간보다 음식에 있다. 비채나는 화려한 기교보다 한식의 기본을 얼마나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는지에 집중한다. 장과 김치, 육수처럼 익숙한 요소를 세심하게 다뤄 한식의 본질을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비채나는 2003년 문을 연 한식당 ‘가온’의 철학과 경험 위에서 출발했다. 한남동에서 시작해 시그니엘 서울로 자리를 옮긴 가온은 오랜 시간 한국 파인다이닝의 흐름을 이끌어왔다. 비채나는 그 정신을 이어받아 전통 한식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잊혀져가는 향토 음식과 조리법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해 ‘한식의 뉴 클래식’을 선보이고 있다.
비채나의 음식은 한식 특유의 ‘조화’에 집중한다.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고, 재료 각각의 맛이 순서를 지키며 드러난다. 실제 방문객들 역시 “소박함으로 큰 울림을 준다”, “부드럽고 섬세하다”, “장과 매운맛의 사용이 인상적이다”라는 후기를 남겼다. 과장된 자극 대신 재료 본연의 향과 온도, 식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점이 비채나의 가장 큰 특징이다.
봄철에 제공되는 ‘삼나물솥밥’은 비채나의 철학을 잘 보여준다. 삼나물은 인삼과 두릅, 소고기를 닮은 풍미 때문에 붙은 이름의 산나물이다. 비채나는 이 삼나물을 건조해 향을 응축한 뒤 다시 불려 육수와 함께 밥을 짓는다. 사용되는 쌀은 향이 좋은 수향미이며, 다시마 육수를 더해 은은한 감칠맛을 살린다. 함께 제공되는 섬초토장국 역시 인상적이다. 백합과 멸치, 새우로 우려낸 국물에 직접 담근 10년 숙성 토장을 풀어 깊이를 더했다. 겨울 해풍을 맞고 자란 섬초의 단맛이 더해지며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맛의 균형을 만든다.
‘전복선’ 역시 비채나를 대표한다. 선(膳)은 조선시대의 전통 찜요리로, 채소와 재료를 정갈하게 감싸 찌는 방식이다. 비채나는 이를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생전복을 무와 파, 다시마로 감싸 먼저 찌고, 그 안에 가리비와 문어, 닭고기를 다져 넣은 뒤 다시 한 번 찐다. 마지막에는 숯불 향을 입혀 마무리한다. 두 번의 찜과 한 번의 굽기를 통해 재료의 부드러움과 깊은 향을 동시에 끌어냈다.
계절감을 살린 메뉴 구성도 비채나의 강점이다. 겨울 시즌에는 대게살 냉채처럼 차가운 바다의 풍미를 담은 요리가 등장한다. 저온에서 쪄낸 대게살과 깨즙으로 버무린 가지나물, 얇게 저민 귤을 함께 구성해 겨울 특유의 맑고 차분한 인상을 만든다. 방문객들 역시 “겨울 땅의 풍미와 겨울 바다의 시원함을 코스 전체에 잘 녹여냈다”고 평가한다. 봄에는 두릅과 제철 생선, 여름에는 장어와 채소를 활용하는 등 계절에 따라 식재료와 조리 방향이 달라진다.
비채나의 코스는 점심 ‘산천 코스’, 저녁 ‘구학 코스’로 운영된다. 이름은 십장생에서 영감을 받았다. 솔잎감주로 시작해 육회, 쑥전, 민어구이, 갈비찜구이, 솥밥과 토장국, 디저트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전통 한식의 구조를 현대적으로 정리한 것에 가깝다. 음식은 코스가 진행될수록 무겁게 누르기보다 담백하게 이어지며, 마지막까지 균형을 유지한다.
공간 역시 비채나에 중요한 요소다. 서울 전경이 한눈에 펼쳐져 창가 좌석과 프라이빗 룸에서는 낮에는 도시의 선명한 풍경을, 저녁에는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많은 방문객들이 기념일이나 가족 모임 장소로 비채나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맨틱한 분위기”,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 “좋은 공간과 좋은 시간이 함께한 곳”이라는 후기처럼 음식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인테리어는 무거운 분위기 대신 절제된 현대적 감각을 택했다. 광주요 식기와 차분한 조명, 넓은 테이블 간격이 어우러져 조용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과하게 장식하지 않지만, 세부적인 디테일에서는 한국적인 미감을 드러낸다. 음식 역시 이러한 공간과 같은 결을 유지한다.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고, 재료와 조리의 본질에 집중한다.
비채나를 경험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정성’과 ‘섬세함’을 이야기한다. 음식 설명과 서비스 역시 세밀하게 이어지며, 접시 하나하나가 단순한 코스가 아니라 완성된 흐름처럼 느껴진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외국인 방문객들도 많아 한국의 전통 식문화를 현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비채나는 한식을 새롭게 만들기보다, 본래의 깊이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려는 레스토랑에 가깝다. 장과 육수, 제철 식재료처럼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정교하게 다듬어 한식의 매력을 차분하게 전달한다. 화려한 연출보다 오래 남는 맛과 분위기. 그것이 비채나가 10년 동안 미쉐린 가이드의 선택을 받은 이유이지 않을까. 비채나는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영업하며 오후 3~6시는 브레이크타임이다. Cook&Chef / 김성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저작권자ⓒ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