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정서윤 기자] 책임감이란 무엇일까. 신뢰란 또 무엇일까. 고가의 서비스를 선택할 때 소비자가 지불하는 비용은 눈앞의 음식과 공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 안에는 설령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곳이 상황을 흐리지 않고, 고객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끝까지 정리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함께 들어 있다.
실수는 어떤 고급 서비스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수천만 원대 항공권이 오가는 일등석에서도 착오는 생기고, 하루 숙박료가 수백만 원에 이르는 호텔에서도 서비스 오류는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실수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다음이다. 고가의 서비스에 포함된 신뢰란 “절대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는 문제가 생겼을 때 고객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고, 상황을 흐리지 않고, 프로답게 회복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까지 포함되어 있다.
파인다이닝의 가격도 마찬가지다. 고객이 미쉐린 레스토랑을 선택하는 이유는 한 접시의 맛 때문만이 아니다. 셰프의 이름, 레스토랑의 이력, 정교한 서비스, 그리고 고객이 모르는 영역까지 대신 책임져 줄 것이라는 믿음이 그 선택 안에 들어 있다. 특히 와인 페어링은 고객이 모든 정보를 즉석에서 검증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레스토랑의 책임은 더 커진다. 고객이 리스트와 잔, 병을 대조하며 오류를 찾아내야 하는 순간, 이미 그 신뢰의 일부는 흔들린다.
최근 안성재 셰프가 이끄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모수 서울에서 불거진 와인 페어링 논란이 많은 관심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객은 페어링 리스트에 안내된 샤또 레오빌 바르똥 생 줄리앙 2000년 빈티지 대신 2005년 빈티지가 제공됐다고 주장했다. 이후 고객이 이를 확인하는 과정, 현장 응대, 그리고 레스토랑의 사과문을 두고 논란은 더 커졌다. 쟁점은 와인 한 잔의 가격 차이에만 있지 않았다. 안내된 것과 실제 제공된 것이 달랐고, 그 차이를 고객이 직접 확인해야 했으며, 이후 설명과 사과가 충분히 투명하지 않았다고 받아들여진 과정 전체가 문제의 중심에 놓였다.
소비자가 수많은 선택지 중 미쉐린 레스토랑을 고르는 이유는 실패 확률을 줄이고 싶기 때문이다. 특별한 날, 중요한 사람과의 식사, 오래 기억하고 싶은 시간을 검증된 공간에 맡기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모수 서울을 선택하는 이유에는 안성재 셰프의 이름과 모수라는 레스토랑이 쌓아온 이력이 함께 작용한다. 고객은 음식만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만들어 온 기준과 경험을 함께 기대한다.
신뢰는 문제 이후의 과정까지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안에서 소믈리에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였어야 했다. 만약 리스트와 다른 빈티지가 제공됐다면, 고객이 먼저 확인하기 전에 그 사실을 멈춰 세우고 설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다른 와인도 맛보게 해드리겠다”는 식의 응대가 아니라, “안내된 빈티지와 실제 제공된 와인이 달랐다”고 정확히 말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고객은 원래 받아야 할 서비스를 선심처럼 제공받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그 경험에 비용을 지불한 사람이다.
레스토랑의 총책임자 역시 이 문제를 현장 직원 개인의 실수로만 두어서는 안 된다. 소믈리에가 직접 서비스를 담당했다 하더라도, 페어링 리스트와 실제 제공 와인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절차, 빈티지가 달라졌을 때 고객에게 먼저 알리는 기준, 오류가 발생했을 때 책임자가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는 모두 레스토랑의 운영 체계와 연결된다. 책임은 “죄송하다”는 문장을 내놓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고객이 받았어야 할 경험과 실제 경험 사이의 차이를 확인하고, 그 차이를 어떻게 회복할지 제시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사과문도 마찬가지다. 정중한 표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과문은 낮은 자세를 보이는 글이면서 동시에 사실을 정리하는 글이어야 한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고객에게 어떤 조치를 할 것인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무엇을 바꿀 것인지가 담겨야 한다. 문제의 이름을 흐리면 사과는 공손해 보여도 책임은 흐릿해지기 때문이다.
고급 외식 서비스에서 신뢰는 접시 위의 완성도에만 머물지 않는다.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어떻게 인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며, 고객의 경험을 어떻게 다시 정리해 주는가까지 그 신뢰의 일부가 된다. 소비자는 완벽한 무결점을 기대하며 비싼 값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가격 안에는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 마무리까지 정돈되게 처리될 것이라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다.
이번 논란이 한 레스토랑의 소란으로만 소비되지 않았으면 한다. 외식 문화가 더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음식의 완성도만큼이나 문제를 대하는 방식, 설명의 정확성, 회복의 과정도 함께 정교해져야 한다. 책임감은 실수가 없을 때만 확인되는 가치가 아니다. 때로는 실수가 드러난 뒤, 그것을 어떻게 마무리하는가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레스토랑이 고객에게 약속하는 것, 고객이 레스토랑에 기대하는 것이 조금 더 세심하게 다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만큼 우리의 외식문화도 한 걸음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Cook&Chef / 정서윤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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