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한식의 정체성을 설명하려 할 때마다 우리는 늘 막힌다. 발효음식, 채소 중심 식단, 건강식, 슬로푸드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그 어느 것도 한식을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한식은 특정 재료나 조리법보다 ‘식사를 구성하는 방식’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 구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서는 궁중음식과 고조리서 속에 남아 있다.
조선의 상차림을 기록한 문헌들을 보면, 한 끼 식사는 한 가지 음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국이 있고, 찌개가 있고, 나물이 있으며, 장으로 간을 맞춘 반찬들이 이어진다. 한 번에 한 가지를 많이 먹는 방식이 아니라, 조금씩 여러 음식을 번갈아 먹는 구조다. 이 방식은 단순한 격식이나 예법의 문제가 아니라, 식사의 속도와 포만감 형성에 깊이 관여하는 구조였다.
궁중의 수라상은 그 대표적인 예다. 밥과 탕, 조림, 구이, 나물, 젓갈, 장아찌가 함께 놓이는 상차림은 한 가지 음식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든다. 자연스럽게 숟가락은 여러 곳을 오가고, 한 입의 양은 작아지며, 식사는 길어진다. 기록에 남아 있는 식사 시간 역시 비교적 여유로운 편이다. 급히 배를 채우기보다는 천천히 식사를 이어가는 흐름이 기본이었다.
이러한 식사 구조는 고조리서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음식디미방』이나 『규합총서』를 보면 특정 음식 하나의 양을 강조하기보다,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드는 법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한 끼 식사는 늘 ‘조합’으로 존재했다. 밥만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국물과 나물, 장으로 간을 맞춘 반찬을 곁들이며 식사를 완성하는 방식이다.
이 구조는 결과적으로 식사의 속도를 늦춘다. 뜨거운 국을 한 숟가락 뜨고, 나물을 집어 먹고, 밥을 한 입 먹는 과정이 반복된다. 음식의 온도와 식감이 다양하기 때문에 급하게 삼키기 어렵고, 씹는 시간이 길어진다. 궁중음식이 정제되고 섬세한 음식이라는 이미지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맛의 강도를 자극적으로 높이기보다는, 여러 음식의 조화를 통해 식사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방식이었다.
나물 문화 역시 이 구조를 뒷받침한다. 조선시대 식탁에서 나물은 단순한 부재료가 아니었다. 계절마다 다른 채소를 말리고 데쳐 저장하며,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 먹었다. 나물은 씹는 시간이 길고, 양념이 강하지 않아 천천히 먹게 만든다. 밥을 빠르게 삼키기보다, 반찬을 하나씩 맛보며 식사의 흐름을 이어가게 하는 역할을 했다.
여기에 장 문화가 더해진다. 된장과 간장은 강한 맛을 내기 위한 조미료라기보다, 음식의 간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짠맛이 중심이지만 자극적이지 않아 한 번에 많은 양을 먹기 어렵고, 음식의 양보다 맛의 균형을 따라가게 만든다. 이는 식사의 속도를 자연스럽게 늦추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구조를 놓고 보면, 전통적인 한식은 ‘빠르게 배를 채우는 음식’과는 거리가 멀다. 밥 한 공기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반찬을 곁들이는 방식은, 양을 늘리기보다는 식사의 시간을 늘린다. 같은 양을 먹더라도 천천히 포만감이 형성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궁중에서도 과식을 권장하는 기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절제와 균형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다. 음식은 풍성했지만, 한 번에 많이 먹기 위한 구성이 아니었다. 여러 음식을 조금씩 맛보는 방식은 식사의 즐거움을 유지하면서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는 장치였다.
오늘날의 식사 방식은 이와 많이 달라졌다. 한 가지 메뉴를 빠르게 먹는 식사가 일상이 되었고, 자극적인 양념과 단맛이 강한 음식이 늘어나면서 식사의 속도는 더 빨라졌다. 같은 밥을 먹어도 금세 허기를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영양의 문제가 아니라, 식사 구조의 변화 때문일 수도 있다.
고조리서와 궁중음식이 보여주는 한식의 본질은 ‘건강식’이라는 개념보다 더 근본적인 데 있다. 천천히 먹게 만드는 상차림, 여러 음식이 만들어내는 식사의 리듬, 조금씩 오래 먹도록 설계된 반찬 구성. 이 모든 것이 합쳐져 한 끼 식사를 완성한다.
어쩌면 한식은 처음부터 ‘천천히 배부르게 만드는 음식’이었는지도 모른다. 특정 성분이나 기능을 의식해 만든 음식은 아니지만, 식사를 이어가는 방식 자체가 포만감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구조였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식사의 시간을 함께 먹고 있었는지도 모른다.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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