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오늘날 냉면은 여름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지만, 기록 속 냉면은 엄연한 겨울 음식이다. 조선 시대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는 겨울철 시식으로 메밀국수에 무김치와 배, 돼지고기를 섞은 냉면을 으뜸으로 꼽았다. 겨울철 갓 담근 동치미의 톡 쏘는 탄산미와 메밀의 구수한 향이 어우러지는 1월은 사실 냉면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가장 적기다.
냉면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 중 하나는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과의 인연이다. 고종은 밤늦게 야식으로 냉면을 즐겨 먹었는데, 대한문 밖 국숫집에서 냉면을 배달해 오게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는 우리나라 배달 문화의 초기 모습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대목이다. 고종은 특히 동치미 국물에 배를 얇게 썰어 넣고 편육과 잣을 띄운 달콤하고 시원한 냉면을 선호했다고 전해지며, 이는 궁중의 화려함보다 소박하면서도 깊은 맛을 즐겼던 왕의 취향을 짐작하게 한다.
겨울에 찬 음식을 먹는 문화는 단순히 기호의 문제를 넘어 이열치열과 맥을 같이 하는 이치냉치의 지혜가 담겨 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온돌방에서 겨울을 나며 몸속에 쌓인 열기를 식히기 위해 시원한 동치미 국물과 냉면을 찾았다. 뜨거운 아랫목에서 땀을 흘리며 얼음이 살짝 띄워진 동치미 국물을 들이키는 것은 추위로 추위를 다스리는 동시에 몸의 균형을 맞추는 선조들만의 건강 관리법이었다.
영양학적으로도 동치미와 냉면의 조합은 훌륭하다. 겨울 무로 담근 동치미는 소화 효소인 디아스타아제가 풍부해 메밀면의 소화를 돕고,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유산균은 겨울철 정체되기 쉬운 장 건강을 지켜준다. 메밀 역시 성질이 차갑지만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해 겨울철 부족하기 쉬운 영양을 채워준다.
따뜻한 실내에서 살얼음 낀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즐거움은 겨울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효율과 편리함에 밀려 계절의 경계가 희미해진 오늘날, 1월의 동치미 냉면은 단순히 차가운 음식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에 따라 몸의 열기를 다스리고 여유를 즐겼던 선조들의 멋스러운 식문화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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