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명절이 지나고 난 뒤의 부엌 풍경은 시대를 막론하고 닮아 있다. 상 위에 올랐던 전과 나물, 산적과 떡이 한꺼번에 남아 ‘어떻게 먹어야 할까’를 고민하게 만든다. 오늘날에는 냉장고와 밀폐 용기가 있지만, 보관 환경이 열악했던 조선 시대에는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 일이 단순한 살림의 문제가 아니라 음식의 가치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생활 기술이었다. 조선의 부엌은 ‘남은 것’을 버리는 공간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조리의 실험실에 가까웠다.
조선의 명절 음식 활용 문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음식은 골동반, 즉 비빔밥이다. 19세기 조리서 시의전서에는 밥 위에 고기와 나물, 전을 올리고 장으로 비벼 먹는 방식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음식은 단순히 남은 반찬을 섞는 데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여러 재료의 맛과 식감을 하나의 그릇 안에서 재구성하는 조리 방식이었다. 특히 섣달그믐날 밤, 집안에 남아 있던 반찬을 모아 비벼 먹는 풍습은 단순한 절약이 아닌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남은 음식을 새해로 넘기지 않는 것은 묵은 기운을 털어낸다는 인식과 연결되었고, 이는 절용과 제구포신의 생활 철학으로 이어졌다. 음식은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순환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리 방식은 영양적 측면에서도 합리적이었다. 명절 상차림에는 육류, 나물, 전, 장류가 고루 포함되는데, 이를 비빔밥으로 재구성하면 탄수화물, 단백질, 식이섬유가 한 끼 안에 균형 있게 결합된다. 남은 음식을 섞는 과정에서 서로의 맛이 겹겹이 어우러지며 감칠맛이 깊어지는 것은 물론, 다양한 재료를 동시에 섭취하는 효과까지 있었다. 단순한 잔반 처리 방식이 아니라, 영양과 풍미를 동시에 고려한 재조합의 음식이었다.
가장 변질이 빠른 전을 활용한 조리법 또한 매우 체계적이었다. 시간이 지나 수분이 빠지고 기름이 굳기 시작한 전은 다시 데워 먹기보다 국물 요리로 전환되었다. 이때 사용된 방식이 궁중과 반가에서 전해지던 ‘조치’ 기법이다. 냄비 바닥에 무와 김치를 깔고 전을 겹겹이 쌓은 뒤 육수를 부어 끓이는 방식으로, 전의 밀가루 옷과 달걀물이 국물에 녹아들며 자연스럽게 점성을 만든다. 별도의 전분이나 밀가루를 넣지 않아도 국물이 걸쭉해지는 원리다. 전 속에 들어간 고기와 해산물의 양념이 끓는 동안 국물로 스며들어 감칠맛을 더하는데, 이는 현대의 스튜나 브레이징과 유사한 조리 과학적 접근으로 볼 수 있다. 남은 음식을 ‘다시 끓인다’는 개념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음식으로 변환시키는 재가공 기술이었다.
설 명절의 상징인 가래떡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다시 쓰였다. 굳어버린 떡을 활용해 만든 궁중 떡볶이, 즉 병자나 떡잡채는 대표적인 예다. 오늘날의 고추장 떡볶이와 달리 간장과 조청으로 맛을 낸 이 음식은 남은 재료를 모아 만든 고급 볶음 요리였다. 딱딱해진 떡을 물에 담가 수분을 되살린 뒤, 참기름과 간장으로 밑간해 서로 달라붙지 않게 하고, 명절에 남은 소고기 산적과 버섯, 채소를 함께 볶아냈다. 떡의 전분이 열을 받으며 다시 부드러워지고, 고기에서 나온 기름이 자연스럽게 코팅 역할을 하면서 쫄깃한 식감을 되살린다. 식감 복원과 풍미 보완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한 조리 방식이다.
나물의 재활용 또한 단순히 다시 데워 먹는 수준을 넘어섰다. 양념이 이미 배어 있는 나물을 잘게 다져 반죽에 섞어 전으로 지지거나, 장조림 국물에 넣어 다시 졸여 보존성을 높이는 방식이 널리 쓰였다. 이는 수분을 날려 부패를 늦추고, 염도를 조절해 저장성을 높이는 전통적 보존 기술의 연장선이었다. 나물의 향과 양념이 다시 농축되면서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효과도 있었다.
이러한 조리 기술만큼 중요한 요소가 ‘반기’ 문화였다. 제사나 명절 잔치가 끝나면 음식을 합에 담아 이웃과 나누는 풍습은 남은 음식을 빠르게 소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냉장 시설이 없는 시대에 음식은 오래 보관하기보다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이는 단순한 나눔을 넘어, 식재료의 낭비를 줄이고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는 생활 방식이었다. 많이 가진 집에서 남은 음식을 이웃과 나누는 일은 사회적 안전망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결국 조선의 명절 음식 처리 방식은 절약을 넘어선 하나의 미식 문화였다.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고 새로운 요리로 재탄생시키는 조리 기술, 음식을 이웃과 나누며 신선할 때 소비하는 공동체적 지혜, 그리고 해를 넘기지 않는다는 상징적 의미가 맞물리며 독특한 식문화가 형성되었다. 오늘날 ‘업사이클링’이나 ‘제로 웨이스트’라는 이름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개념은 이미 오래전 우리의 부엌 안에서 실천되고 있었던 셈이다.
명절이 끝난 뒤 냉장고 속에 남은 음식은 처리해야 할 부담이 아니라,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낼 재료가 된다. 비빔밥, 전찌개, 궁중 떡볶이처럼 한 번의 상차림이 또 다른 식탁으로 이어지는 이 흐름은 조선의 살림이 지녔던 합리성과 창의성을 보여준다. 버려지는 것에 생명을 다시 불어넣는 기술과, 함께 나누며 소비하는 태도. 그 속에는 음식의 가치를 끝까지 지켜내려 했던 선조들의 생활 철학이 담겨 있다.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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