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만으로 정상에 오른 레스토랑, 단순함이 만든 깊이
전통을 복원하고 현재로 확장하다, 더 체어맨의 조용한 혁신
사진 = thechairmanrestauranthk 인스타그램
[Cook&Chef = 허세인 기자] 홍콩 셩완의 조용한 골목 안쪽, 겉으로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한 레스토랑이 있다. 더 체어맨. 이곳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플레이팅도, 과장된 연출도, 화려한 홍보 전략도 없다. 그럼에도 2026년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1위에 다시 오르며, 오늘날 아시아 미식의 중심에 섰다.
이 레스토랑을 이끄는 인물은 정통 셰프 교육을 받지 않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대니 입이다. 그의 요리는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오히려 트렌드에 질문을 던진다. 왜 지금, 이 단순한 요리가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가. 그 답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 그리고 집요함에 있다.
본질로 돌아가는 선택
경제학을 전공한 대니 입은 홍콩과 호주를 오가며 음식 작가, 프로듀서 등 음식 관련 작업을 이어왔고, 캔버라에서 약 20년간 광둥식 레스토랑 그룹을 운영했다. 이 시기 그는 한 가지 문제를 분명히 인식하게 된다. 빠른 서비스와 표준화된 식재료에 밀려, 광둥 요리 본연의 깊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2009년 홍콩으로 돌아와 더 체어맨을 연 그는 복원에 가까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잊혀진 식재료와 조리법을 다시 찾아내고, 지역 생산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공급망 자체를 새롭게 구축했다. 이는 단순한 레스토랑 운영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선언에 가까웠다.
2010년대, 광둥 요리를 선보이던 레스토랑들이 연회식 요리를 택해 조리 과정을 간소화하거나 퓨전 요리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더 체어맨은 순수한 광둥 요리가 무엇인지 탐구하기 시작했다. 대니 입의 요리는 화려한 변주보다 본질에 집중한다. 간결하지만 깊고, 절제되어 있지만 풍부하다. 광둥 요리의 핵심인 ‘신선함’을 가장 정직한 방식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다.
숙성 샤오싱주를 곁들인 꽃게찜. 사진 = 더 체어맨(www.thechairmangroup.com)
재료를 향한 집요함
더 체어맨의 주방은 재료에서 시작된다. 매일 아침 직원이 직접 어시장으로 향해 해산물을 고르고, 지역 농가 및 생산자들과 긴밀하게 협력해 최상의 식재료를 확보한다. 이는 단순한 신선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재료를 어떻게 선택하느냐가 곧 요리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가능한 모든 것을 직접 만든다. 간장, 식초, 향미유, 절임류 등은 물론이고, 일부 발효 식품과 숙성 재료까지 주방에서 생산된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대니 입은 이를 통해 재료의 언어를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대표 메뉴인 숙성 샤오싱주와 닭기름, 쌀국수를 곁들인 꽃게 요리 역시 이러한 철학의 집약체다. 복잡한 기술보다 재료의 조화와 시간의 축적이 맛을 완성한다. 하나의 요리가 탄생하기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덜어냄으로 완성하는 요리
대니 입의 선택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사용하지 않는 것’에 있다. 그는 고급 중식 식재료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상어 지느러미, 해삼, 제비집을 과감히 메뉴에서 배제했다. 대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지역 식재료와 전통적인 조리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는 단순한 윤리적 판단을 넘어, 광둥 요리를 다시 정의하려는 시도다. 값비싼 재료가 아닌, 올바르게 다뤄진 재료가 최고의 요리를 만든다는 믿음. 이 철학은 대니 입 혼자만의 신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직원들을 ‘빈티지 팀’이라 부르며, 이들이야말로 레스토랑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수년, 길게는 십수 년을 함께해 온 이 팀은 서비스와 주방 전반에서 그의 철학을 자연스럽게 구현해 낸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부터 음식을 내는 방식까지, 과시보다 편안함과 진정성을 우선하는 분위기는 이들의 축적된 시간에서 비롯된다. 더 체어맨의 경험은 한 명의 셰프가 아닌, 오랜 호흡으로 완성된 팀 전체의 결과물에 가깝다.
사진 = thechairmanrestauranthk 인스타그램
겸손이라는 철학
더 체어맨의 성공은 아이러니하게도 ‘덜 보여주기’에서 비롯됐다. 소셜 미디어 활동은 거의 없고, 마케팅 역시 최소한에 그친다. 그럼에도 이곳은 전 세계 미식가들이 찾는 레스토랑이 되었고, 입소문만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대니 입은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아직 배우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는 매일 새로운 식재료를 찾고, 더 나은 조리법을 고민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기준을 갱신한다. 이 겸손함이야말로 그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요리는 복잡할 필요가 없으며, 본질에 가까워질수록 더 깊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 본질은 언제나 재료와 사람, 그리고 시간을 향해 있다. 좋은 요리란 무엇인가. 대니 입은 그 답을 누구보다 조용하고 단단하게 증명하고 있다.
Cook&Chef / 허세인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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