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의 옥수수 호박 스튜에 고기를 더한 국민 메뉴
[Cook&Chef = 정수연 기자] 5월 25일 아침, 부에노스아이레스 곳곳의 식당과 가정에서는 평소보다 큰 냄비가 일찍 불에 오른다. 밤새 불려둔 흰 옥수수와 콩에 호박을 풀고, 소고기와 돼지고기, 초리소를 차례로 넣어 몇 시간씩 끓이면 진하고 걸쭉한 스튜 한 솥이 완성된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혁명 기념일을 맞는 음식, 로크로다.
거리에는 하늘색과 흰색 깃발이 걸리고, 광장에서는 음악과 공연이 이어진다. 그 사이 식당에서는 김이 오르는 로크로가 연이어 그릇에 담기고, 사람들은 가족과 이웃이 기다리는 집으로 넉넉한 양을 포장해 간다. 국가의 출발을 기념하는 하루가 뜨거운 한 끼와 함께 흘러가는 것이다.
5월 25일은 181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스페인 부왕을 대신할 첫 자치정부가 구성된 날이다. 공식적인 독립 선언은 1816년 7월 9일 투쿠만에서 이뤄졌지만, 아르헨티나인들은 5월 혁명을 주권 국가로 향한 출발점으로 기억해왔다. 두 국경일의 식탁에서 공통으로 만날 수 있는 음식도 로크로다.
그런데 로크로의 역사는 아르헨티나라는 국가보다 훨씬 오래됐다. 안데스 원주민이 옥수수와 호박, 콩을 끓여 먹던 음식이 식민기를 거쳐 육류를 받아들이고, 사람들의 이동을 따라 전국으로 번진 뒤에야 혁명과 독립을 기념하는 조국의 맛으로 자리 잡았다. 한 나라의 역사가 이미 존재하던 음식에 새로운 의미를 입힌 셈이다.
안데스의 땅이 만든 한 냄비
로크로라는 이름은 케추아어 ‘루크루’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늘날 아르헨티나의 대표 음식으로 통하지만, 그 뿌리는 페루와 볼리비아, 에콰도르에서 아르헨티나 북서부까지 이어지는 안데스 문화권에 놓여 있다. 국경이 그어지기 전부터 옥수수를 재배해온 여러 공동체가 각자의 환경과 생활에 맞춰 발전시킨 음식이었다.
안데스의 농경문화에서 옥수수와 콩, 호박은 계절을 건너는 식량이었다. 수확한 곡물을 말리거나 저장해두면 농사가 어려운 시기에도 꺼내 먹을 수 있었고, 단단한 재료를 충분히 불린 뒤 오래 끓이면 많은 식구가 나눌 만한 양으로 늘어났다. 호박은 열을 받으며 국물에 풀어지고, 곡물의 전분은 맑던 물을 묵직한 스튜로 바꿔놓는다.
아르헨티나 북서부의 건조한 고원과 계곡에서는 저장해둔 식재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생활과 곧바로 연결됐다. 옥수수와 콩을 한 냄비에 모으고, 지역에서 구한 호박과 감자, 고추를 더해 천천히 익히는 로크로는 이 땅의 작물과 생활 리듬에 잘 맞았다. 불 위에 오래 머무는 조리법 자체가 안데스의 계절을 건너는 지혜였던 것이다.
지역에 따라 말린 고기인 차르키를 더하기도 했다. 수분을 줄여 보관 기간을 늘린 고기는 필요할 때 잘라 냄비에 넣을 수 있었고, 곡물과 채소가 만드는 부드러운 맛에 짙은 풍미를 보탰다. 로크로의 출발점에는 화려한 잔치상보다 저장한 작물을 끝까지 활용하려는 생활의 감각이 놓여 있었다.
옥수수에 고기까지 더해지다
스페인 세력이 남아메리카에 들어오면서 로크로의 재료도 넓어졌다. 유럽에서 건너온 소와 돼지가 지역의 목축문화에 자리 잡았고, 소시지와 염장육을 만드는 기술도 퍼져나갔다. 안데스의 곡물 스튜는 새로운 육류와 지방, 향신료를 받아들이며 오늘날의 아르헨티나식 로크로로 모습을 다듬어갔다.
현재 로크로에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초리소, 베이컨을 비롯해 족발과 돼지껍질, 내장 부위까지 폭넓게 사용된다. 긴 시간 익혀야 부드러워지는 부위도 약한 불 위에서는 깊은 맛을 내는 재료가 된다. 고기에서 나온 지방과 젤라틴이 국물의 밀도를 높이면, 호박과 옥수수는 짙은 육향을 감싸며 전체의 균형을 잡아준다.
이 한 냄비에는 아르헨티나 음식문화의 여러 시간이 함께 남아 있다. 원주민이 길러온 옥수수와 호박, 식민기를 거쳐 확산된 소와 돼지, 각 지역에서 선택한 향신료와 손질법이 층층이 쌓였다. 아르헨티나를 아사도와 소고기의 나라로만 기억해온 사람이라면, 로크로의 첫 숟가락에서 그보다 오래된 안데스의 식문화를 만나게 될 것이다.
지역의 조건에 따라 맛도 달라졌다. 북서부에서는 차르키와 흰 옥수수를 중심으로 끓이는 방식이 이어졌고, 어떤 지역은 고기와 초리소를 넉넉히 넣어 한층 묵직한 맛을 냈다. 가정마다 호박의 양과 국물의 농도, 매운 소스의 배합도 달랐기에 로크로는 정해진 하나의 조리법보다 지역과 가족의 기억을 품은 음식으로 자라왔다.
고향을 떠난 사람과 함께 움직이다
북서부와 쿠요 지역에서 오래 끓어온 로크로는 사람들의 이동을 따라 아르헨티나 전역으로 퍼졌다. 고향을 떠나 산타페와 코르도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착한 이들은 국경일이 돌아오면 익숙한 곡물을 불리고 큰 냄비를 꺼냈다. 새로운 도시에서도 어린 시절 먹었던 맛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였다.
살타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어머니가 해마다 로크로를 끓였고, 이웃들이 그릇을 들고 기다렸다는 가족의 기록도 남아 있다. 처음에는 낯선 향에 이끌려 한 그릇을 받아 들었던 사람도 몇 번의 국경일을 함께 보내면서 그 음식을 기다리게 되었을 것이다. 한 지역의 조리법은 그렇게 이웃의 입맛과 다음 세대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로크로는 수도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도시의 식생활을 받아들였다. 북서부의 방식이 그대로 이어진 집도 있었고, 고기의 종류나 양념을 달리한 식당도 생겨났다. 지역마다 맛은 달랐지만, 특정한 날이면 로크로를 끓인다는 행동은 점차 전국이 공유하는 풍경으로 굳어갔다.
음식이 전국으로 퍼지는 과정에는 공식적인 선언보다 수많은 가정의 부엌이 더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누군가 고향의 맛을 재현하고, 이웃이 그 한 그릇을 받아들이며, 자녀가 다시 같은 냄비를 꺼내는 동안 로크로는 지역 음식에서 국민의 일상으로 자리를 넓혔다.
오래된 음식에 혁명의 기억이 쌓이다
로크로가 5월 혁명 기념일의 음식으로 태어난 시점은 1810년보다 뒤에 놓여 있다. 안데스의 오래된 식문화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아르헨티나가 자국의 역사와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로크로는 점차 국경일의 상징으로 선택됐다.
아르헨티나인들은 5월 25일과 7월 9일이 돌아올 때마다 같은 음식을 준비했다. 부모가 끓인 로크로를 자녀가 기억하고, 학교와 지역단체가 큰 솥을 마련하며, 식당들이 국경일 메뉴로 내놓는 일이 반복됐다. 개인의 식사 경험은 세대를 건너 공동의 관습으로 성장해왔다.
계절도 이 전통을 오래 붙들어주었다. 남반구의 5월은 가을이 깊어지는 시기이고, 7월은 겨울의 중심이다. 찬 날씨 속에서 뜨거운 국물과 곡물, 콩과 육류를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로크로는 몸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한 끼였다. 국가의 기억을 기리는 음식이 그 계절에 실제로 먹고 싶은 맛이었기에 사람들은 해마다 다시 냄비를 올릴 수 있었다.
로크로는 과거의 사건을 재현하는 음식이라기보다, 오늘의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에 해당한다. 혁명의 날짜는 달력에 기록되어 있고, 그 의미는 해마다 반복되는 식사를 통해 생활 속으로 들어온다. 오래된 안데스 스튜가 조국의 맛이 된 과정도 바로 이 반복에서 완성됐다.
여러 손이 필요한 음식
로크로의 조리는 식사 전날부터 시작된다. 흰 옥수수와 콩을 충분히 불리고, 고기와 채소를 손질한 뒤 다음 날 이른 시간부터 냄비에 불을 올린다. 재료가 익고 호박이 풀어질 때까지 몇 시간이 걸리며, 국물이 걸쭉해질수록 바닥이 눌지 않도록 계속 저어주어야 한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여러 손을 불러들인다. 누군가는 곡물을 준비하고, 다른 이는 고기를 다듬으며, 불 앞에서는 차례로 냄비를 살핀다. 한두 그릇을 위해 만들기에는 많은 시간과 수고가 들지만, 큰 솥으로 끓이면 가족과 이웃, 행사에 모인 사람들까지 넉넉하게 먹일 수 있다.
그래서 로크로는 국경일뿐 아니라 노동절과 학교 행사, 지역 축제와 자선 모임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사람들이 함께 만든 음식을 판매해 학교 운영이나 지역 복지에 보태고, 무료 급식소에서는 큰 냄비에 로크로를 끓여 이웃과 나눈다. 함께 준비하고 함께 먹는 조리 방식이 오늘날에도 공동체의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오랜 시간 끓이는 동안 각각의 재료는 조금씩 형태를 풀어놓고 하나의 농도를 만든다. 그렇다고 맛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옥수수의 식감과 콩의 고소함, 호박의 단맛과 고기의 풍미가 차례로 드러나며, 양파와 고추로 만든 매콤한 소스가 묵직한 국물에 선명한 끝맛을 더한다.
경기장 밖에서 만나는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바라보면 하늘색과 흰색 유니폼이 관중석을 채우고, 수많은 목소리가 하나의 응원으로 모이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국경일의 식탁에서는 그 결속이 조금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거대한 냄비를 가운데 두고 가족과 이웃이 자리를 나누며, 여러 시간이 스며든 한 그릇을 함께 먹는다.
국경일 무렵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찾는다면 식당 앞 솥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걸쭉한 로크로가 연이어 그릇에 담기는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광장에서는 깃발과 음악이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고, 사람들은 포장한 음식을 들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한다. 국가의 역사가 박물관의 전시가 아니라 오늘의 식사 습관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로크로 한 그릇을 맛보는 일은 아르헨티나의 여러 층위를 함께 만나는 경험이 되어준다. 첫 숟가락에는 안데스의 옥수수 농경이 담겨 있고, 진한 육향에서는 식민기 이후의 목축문화를 읽을 수 있다. 큰 냄비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에는 고향을 떠난 이주민과 가족의 기억, 국경일마다 다시 모이는 공동체의 시간이 남아 있다.
안데스에서 시작된 옥수수 스튜는 식민기의 변화와 사람들의 이동을 품고 전국으로 흘러갔다. 아르헨티나인들은 해마다 같은 날짜에 냄비를 올리며 그 오래된 음식에 혁명과 독립의 기억을 더해왔다. 경기장의 함성이 잦아든 뒤에도 로크로가 계속 끓는 이유다. 이 한 그릇에는 아르헨티나가 자신의 역사를 기억하고, 가족과 이웃에게 다시 나누는 방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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