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과 국그릇은 손으로 받쳐 사용

[Cook&Chef = 정수연 기자] 일본인과의 식사 자리에 초대받았다. 눈앞에는 밥과 국, 여러 반찬과 젓가락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익숙한 식기들인데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젓가락은 식사하는 사람의 앞쪽에 가로로 놓였고, 왼쪽 앞에는 밥그릇, 오른쪽 앞에는 국그릇이 자리했다. 한국에서 늘 보던 밥상과 닮았지만 손이 움직이는 순서는 조금 다르다.
무엇부터 들어야 할까. 국은 숟가락 없이 어떻게 먹을까. 대화가 시작되면 젓가락은 어디에 내려놓아야 할까. 평소에는 떠올릴 일 없던 질문들이 짧은 젓가락 한 벌 앞에서 차례로 생겨난다.
젓가락보다 먼저 오가는 말
음식이 모두 나왔는데도 사람들의 손은 잠시 멈춰 있다. 누군가 두 손을 모으고 “이타다키마스”라고 말하자 식탁에 앉은 이들도 인사를 건넨다.
한국어로는 흔히 ‘잘 먹겠습니다’라고 옮기지만, 말의 중심에는 눈앞의 음식과 한 끼를 준비한 손길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일본의 식사는 젓가락을 드는 순간보다 조금 먼저,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인사를 마친 뒤에야 손이 젓가락으로 향한다. 일본의 젓가락은 식사하는 사람의 앞에 가로로 놓이며, 음식을 집는 쪽의 끝은 왼쪽을 향한다. 잠시 내려둘 때에는 그릇 가장자리에 걸치기보다 ‘하시오키’라고 부르는 받침 위에 올린다.
일회용 젓가락을 세게 비비거나 손에 든 젓가락으로 사람과 음식을 가리키는 행동도 삼가는 편이 좋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동작 안에 음식을 준비한 사람과 한자리에 앉은 이를 대하는 태도가 드러난다.
손바닥 위로 올라온 밥과 국
인사가 끝나자 옆자리 사람이 왼손으로 밥그릇을 들어 올린다. 잠시 뒤에는 국그릇을 입에 대고 국물을 마신다. 숟가락을 찾던 시선이 그제야 멈춘다.
일본의 전통적인 밥상에서는 밥그릇과 국그릇처럼 작고 가벼운 식기를 손에 받쳐 든다. 밥은 젓가락으로 먹고, 된장국은 그릇째 입으로 가져가 마신다. 국 안에 든 두부와 채소도 젓가락으로 집는다. 카레나 오므라이스처럼 숟가락이 어울리는 음식도 있지만, 밥과 국, 반찬으로 차린 한 상에서는 젓가락이 식사의 여러 역할을 맡는다.
손에 드는 그릇은 밥그릇과 국그릇처럼 안정적으로 받칠 수 있는 크기가 중심이다. 큰 접시는 상에 둔 채 먹고, 위치를 옮겨야 할 때에는 젓가락 끝으로 끌어당기기보다 손으로 잡아 움직인다. 일본 식탁에서 그릇과 젓가락은 따로 떨어진 도구가 아니라 손의 움직임을 함께 만드는 한 벌에 가깝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일본 젓가락이 짧고 가벼운 이유도 조금씩 선명해진다. 젓가락은 먼 접시까지 길게 뻗기보다 손에 든 작은 그릇과 입 사이를 오간다.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형태는 작게 담긴 반찬을 집거나 생선 살과 잔가시를 세밀하게 다룰 때 힘을 발휘한다.
세 나라의 식탁이 빚은 서로 다른 두 가닥
한국과 중국, 일본은 모두 젓가락을 사용해왔지만, 상차림의 구성과 음식을 나누는 방식, 밥과 국을 먹는 도구는 서로 달랐다. 오랜 시간 이어진 식사의 움직임은 젓가락의 길이와 재질, 끝의 형태에도 각기 다른 흔적을 남긴 것이다.
한국에서는 숟가락이 밥과 국을 맡고 젓가락은 주로 반찬을 집는다. 밥그릇과 국그릇은 상 위에 둔 채 먹으며, 금속 숟가락과 젓가락이 한 벌을 이룬다. 국과 찌개, 여러 반찬이 함께 오르는 밥상에서 두 도구는 역할을 나누며 한 끼를 완성시켜왔다.
중국에서는 여러 사람이 넓은 식탁을 둘러싸고 가운데 놓인 요리를 나누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공동 접시의 음식을 개인 그릇으로 옮기는 식문화 속에서 한국과 일본보다 긴 젓가락이 널리 쓰였다. 볶거나 튀긴 음식과 큼직하게 손질한 재료를 집어 옮기기에는 길고 가벼운 나무젓가락과 대나무젓가락이 어울린 것이다.
반면 일본의 밥상은 개인 앞에 놓인 작은 그릇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밥그릇과 국그릇을 손에 들고 젓가락으로 밥과 반찬을 먹으며, 가늘어진 끝으로 작은 재료와 생선의 잔가시를 다룬다. 이러한 식문화는 짧고 가벼우며 끝이 뾰족한 젓가락의 발달과 맞물리게 되었다.
젓각 나라가 무엇을 먹었고, 어떤 식탁에 둘러앉았으며, 음식을 어떤 그릇과 도구로 나눴는지가 젓가락을 움직이는 방식까지 바꾸었다. 일본의 짧은 젓가락을 이해하면 밥그릇을 손에 드는 이유와 그릇을 젓가락으로 끌지 않는 예절, 음식의 모양을 살피며 집는 태도도 하나의 흐름 안에서 읽을 수 있다.
짧고 뾰족한 젓가락이 음식을 세밀하게 다루는 도구라면, 일본의 젓가락 예절은 그 주의를 사람과 식기까지 넓힌 방식이다. 먹을 음식을 정한 뒤 젓가락을 뻗고, 접시의 담음새를 살피며 필요한 만큼 집는다. 눈앞의 음식을 헤집지 않고 그릇을 손으로 옮기는 행동도 이러한 식사의 흐름을 지키기 위해서다.
대화가 이어지자 옆자리 사람이 젓가락을 하시오키 위에 내려놓는다. 시선도 젓가락의 모양에서 사용 방식으로 옮겨간다. 익숙한 두 가닥이 일본 식탁에서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가 이제 하나씩 드러난다.
젓가락으로 바라보는 예절
특히 말을 나눌 때 젓가락을 흔들거나 상대를 향해 뻗지 않는다. 무엇을 먹을지 망설이며 여러 접시 위를 오가거나, 원하는 재료를 찾기 위해 음식을 헤집는 행동도 피한다. 그릇을 움직이고 싶다면 젓가락 끝으로 끌어오기보다 손으로 조심스럽게 옮긴다.
일본에는 음식을 찌르는 ‘사시바시’, 무엇을 먹을지 고르며 여러 접시 위에서 젓가락을 움직이는 ‘마요이바시’, 젓가락으로 그릇을 끌어당기는 ‘요세바시’처럼 피해야 할 동작마다 이름이 붙어 있다. 명칭이 붙었을만큼 중요시 여기는 예절이다. 음식과 식기를 거칠게 다루지 않고 함께 식사하는 사람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이다.
밥에 젓가락을 수직으로 세우는 행동과 젓가락끼리 음식을 주고받는 행동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밥 위에 세운 젓가락은 망자에게 올리는 밥을 떠올리게 하며, 두 사람의 젓가락 사이로 무언가를 옮기는 모습은 화장 뒤 유골을 수습하는 절차와 겹친다.
상대에게 음식을 건네고 싶다면 자신의 젓가락에서 상대의 젓가락으로 바로 옮기지 않고 작은 접시에 내려놓는다. 배경을 알고 나면 금기는 외워야 할 항목으로만 남지 않는다. 일상의 식사와 의례의 장면을 구분해온 문화가 젓가락 끝까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 접시를 나누는 또 다른 방식
개인 앞에 놓인 음식이 조금씩 줄어들 무렵, 여러 사람이 나눌 요리가 식탁 가운데 올라온다. 각자의 손은 음식보다 공용 젓가락을 먼저 향한다. 먹을 만큼 덜어 작은 개인 접시에 옮긴 뒤 자신의 젓가락으로 식사를 이어간다.
일본의 가정식이나 이자카야에서도 여러 사람이 한 접시의 음식을 나누는 장면은 흔하다. 다만 공동 접시에서 집은 음식을 곧바로 입으로 가져가기보다 개인 접시를 한 번 거친다. 한 상을 함께 나누면서도 각자가 먹는 영역은 작은 그릇 안에서 정돈된다.
공용 젓가락이 보이지 않는다면 개인 젓가락의 반대쪽을 사용하는 것보다 새 젓가락이나 덜어낼 도구를 요청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손으로 쥐었던 부분을 음식에 대는 상황을 피하면서 함께 먹는 사람에 대한 배려도 지킬 수 있다.
일본 가정에서 가족 구성원마다 자신의 밥그릇과 젓가락을 정해 사용하는 문화도 이 흐름과 이어진다. 공동의 식탁에서 음식을 나누되, 입이 닿는 식기에는 개인의 자리가 분명하다. 함께 먹는 즐거움과 각자의 경계가 한 상 안에서 나란히 이어진다.
젓가락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시간
식사가 끝나갈 무렵 사람들은 젓가락을 하시오키 위에 내려놓는다. 사용한 그릇을 높이 포개거나 한쪽으로 밀어두기보다 처음 놓였던 자리에 정돈한다. 식탁 위를 오가던 손길도 차츰 잦아든다.
이어 두 손을 모으고 “고치소사마데시타”라고 말한다. 식사 전의 ‘이타다키마스’가 눈앞의 음식과 이를 준비한 손길을 받아들이는 인사라면, 마지막에 건네는 말은 한 끼가 완성되기까지 이어진 수고에 감사를 돌려준다.
처음 식탁 앞에서 떠올랐던 질문들도 어느새 답을 얻었다. 인사를 마친 뒤 젓가락을 들고, 밥그릇과 국그릇은 손에 받쳐 먹는다. 그릇은 손으로 옮기며, 공동 음식은 개인 접시에 덜어낸다. 젓가락 끝이 향하는 곳과 두 가닥 사이를 오가는 음식에도 일본 식탁이 지켜온 약속이 담겨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젓가락을 사용해왔지만 각 나라의 음식과 식기, 상차림은 서로 다른 손의 움직임을 만들었다. 일본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익숙한 젓가락이 새롭게 보였던 이유도 그 두 가닥을 움직이는 방식에 있었다.
식탁 위에 놓인 짧은 젓가락 한 벌에는 일본이 한 끼를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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