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이경엽 기자] “벼농사는 볏짚도 갈고 써레질도 하는데, 사람농사는 아무 준비 없이 치르고 있다.”
지난 2008년, 초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정운천 재단법인 활농 이사장의 이 한마디는 저출산 시대의 핵심을 꿰뚫는다. 지난 7월 1일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차세대 리더과정’ 강연에서 정 이사장은 저출산 문제를 단순한 사회 현상이 아닌 “국가 존망의 위기”로 규정하며, 그 뿌리를 ‘밥상’에서 찾았다.
1971년 102만 명에 달했던 출생아 수는 2023년 23만 명으로 78% 급감했다. 통계청과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출생아는 11만 5천 명이었고, 이 중 무려 34.1%는 유산 또는 사산으로 이어졌다.
같은 기간 난임 치료를 받은 환자는 매해 23만 명 수준에 달하며, 이는 사실상 출생아 수를 추월한 것이다. 정 이사장은 “우리 부모 세대는 ‘손만 잡아도 임신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수천만 원을 들여 시험관 시술을 해도 임신이 어렵다”며 “정자와 난자 기능의 저하가 저출산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전북대 임상실험에서 입증된 발효한식의 생식 건강 효과
문제의 핵심은 식생활이다. 정 이사장은 “500년 전 우리 조상들의 유전자와 지금의 유전자는 다르지 않다. 그런데 밥상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흑인이 백인이 되려면 백인의 식단을 천 년 먹어야 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수천 년간 초식 기반으로 살아온 한국인이 불과 30년 사이에 인스턴트, 육식, 고열량 식단에 노출된 것이 난임과 질병의 직접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인은 초식동물에 가까운 생리 구조를 지닌다. 대장은 서양인보다 1.5미터 이상 길며, 장내 미생물도 발효식품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햄버거, 라면, 피자, 튀김류로 대표되는 서구식 식단이 일상화되면서 장내 환경은 급속히 나빠졌고, 이는 정자와 난자 기능 저하로 이어졌다. 정 이사장은 “장내 환경은 호르몬 균형과 생식 기능에 직접 연결되며, 대사 이상은 곧바로 임신력 감소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관 재임 시절 이 문제의 과학적 검증에 나섰다. 전북대병원 임상센터에 10억 원을 투입해 ‘한식 섭취가 생식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임상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은 8주간 두 그룹의 식단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한 그룹은 김치·된장·고추장 등 발효식품 중심의 한식을 섭취했고, 다른 그룹은 햄버거·피자·라면 등 인스턴트 식품을 중심으로 섭취했다. 그 결과, 한식 섭취 그룹은 정자 운동성이 뚜렷하게 향상되었으며, 남성호르몬 수치도 증가했다. 반면 인스턴트 그룹은 정자 운동성이 저하되고, 고지혈증 및 염증 수치가 상승했다. 정 이사장은 이 실험을 통해 ‘밥상이 곧 생식 건강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초식 기반 유전자에 맞지 않는 인스턴트 식단, 난임을 불렀다
그는 이러한 왜곡된 식생활 문제를 2008년 광우병 사태와 연결지어 설명했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육식 사료를 먹이면 광우병이 생기는 것처럼, 초식 위주로 진화해온 인간에게 인스턴트를 먹이면 생식 기능에 치명타가 온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건강 문제가 아닌, 유전자와 식단의 불일치에서 비롯된 생태적 충돌이라는 것이다. 그는 “소에게 소고기를 먹이면 안 되듯, 사람도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병이 생긴다. 이건 탐욕의 결과”라고 단언했다.
발효한식에 대한 재조명도 이어졌다. 김치, 된장, 고추장 등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장내 환경을 회복시키는 ‘기능성 식품’이다. 된장은 대장 건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며, 김치는 유산균과 항산화 물질이 풍부해 염증을 억제하고 호르몬 균형을 돕는다. 그는 “김치가 없으면 밥상이 허전한 게 아니라, 몸이 허전한 것이다. 된장이 정자를 살리고, 김치가 아이를 만든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이어 “임신에 성공하려면 임신 3개월 전부터 최소 6개월간 식단을 바꾸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사람의 체세포는 약 3개월 주기로 교체되기 때문에, 최소 반년만이라도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면 생식 능력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정자 건강이 전체 임신 성공률의 절반 이상을 좌우하는 만큼, 남성의 식생활 개선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식생활 기본법, 사람농사를 위한 국가 전략으로 시급
강연의 결론은 분명했다. 이제 저출산은 보조금이나 주거지원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출산은 생식이고, 생식은 생리이고, 생리는 식생활과 연결되어 있다는 구조적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 이사장은 식생활 기본법 제정을 제안했다.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식생활 교육을 포함하고, 임신 전·후 식습관 개선을 위한 국가 차원의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난임의 시대, 밥상은 가장 오래된 해답이자 가장 과학적인 해법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오늘날 된장과 김치, 전통 한식의 자리에서 다시금 재발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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