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길라떼 기자] 캘리포니아의 햇살이 쏟아지는 어느 오후의 주방. 인플루언서의 브이로그 속에서 경쾌하게 칼질하는 손이 멈춘 곳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식재료, 바로 두부다. 노릇하게 구워진 두부가 퀴노아와 아보카도, 다채로운 채소와 어우러진 샐러드 볼은 이제 더 이상 소수의 비건이나 동양인만의 식탁 풍경이 아니다. 이것은 지금, 미국 주류 사회의 가장 트렌디한 한 끼 식사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마트 한구석에서 낯선 식재료 취급을 받던 두부가 이토록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중심에는, 우리의 식품 기업 풀무원이 있다. 지난해 풀무원 미국법인이 두부 하나로 올린 매출은 무려 2,242억 원(1억 5,760만 달러). 전년 대비 12.2% 성장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이 숫자는 단순한 실적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K-푸드가 어떻게 세계의 식문화에 스며들어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는지에 대한 가장 생생하고 감각적인 증거다.
우리의 소박한 두부가 어떻게 지구 반대편의 식탁을 사로잡았을까. 그 여정은 단순히 ‘한국의 맛’을 전파하는 것을 넘어, 현지의 라이프스타일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로 말을 거는 섬세한 과정이었다. 풀무원의 이야기는 음식을 통해 문화를 제안하고, 맛을 넘어선 가치를 파는 K-푸드의 눈부신 진화를 보여준다.
웰니스 시대, 미국 식탁의 변화를 읽다
성공의 배경에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이 있다. 오늘날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과 ‘지속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매일 고기를 먹던 식습관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채식을 병행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그 증거다. 이들은 더 나은 자신과 더 나은 지구를 위해 기꺼이 식물성 단백질을 선택한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두부는 완벽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고단백, 저칼로리, 그리고 식물성이라는 삼박자를 모두 갖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회에는 언제나 장벽이 따르는 법. 미국인들에게 두부는 오랫동안 ‘건강하지만 맛없고, 요리하기 번거로운’ 식재료라는 편견에 갇혀 있었다. 팩을 가득 채운 물(충진수)을 버려야 하는 과정부터, 밍밍한 맛을 어떻게 살려야 할지 막막하게 느끼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풀무원의 혁신은 시작됐다. 그들은 두부의 본질적 가치는 지키되, 소비자가 느끼는 불편함과 심리적 장벽을 하나씩 허물어 나가는 영리한 전략을 택했다. 이것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두부를 즐기는 새로운 ‘문화’와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혁신의 시작, '하이 프로테인 두부'의 탄생
풀무원 성공 신화의 중심에는 단연 ‘하이 프로테인 두부(High Protein Tofu)’가 있다. 이 제품은 이름 그대로 단백질 함량을 극대화한 전략적 카드였다. 1회 섭취량 85g당 단백질 함량이 14g에 달하며, 이는 일반 두부보다 1.8배나 높은 수치다. 근육 생성과 건강한 신체에 민감한 미국 소비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저격한 것이다.
하지만 진짜 ‘신의 한 수’는 바로 ‘편의성’의 혁신에 있었다. 풀무원은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만 미국인에게는 번거로움의 상징이었던 충진수를 과감히 없앴다. 대신 진공 포장 기술을 도입해 포장을 뜯자마자 바로 요리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물기를 빼기 위해 두부를 누르고 기다릴 필요 없이, 포장에서 꺼낸 단단한 두부를 그대로 뜨거운 팬이나 에어프라이어에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작은 차이가 만들어낸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빠르고 건강한 식사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매력적인 제안은 없었다. 샐러드 토핑으로, 샌드위치 속 재료로, 혹은 간단한 볶음 요리로 두부는 순식간에 변신했다. 이 경험은 ‘두부 요리는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결과는 숫자로 증명됐다. ‘하이 프로테인 두부’의 매출은 2021년 156억 원에서 최근 415억 원으로 세 배 가까이 폭증하며 전체 두부 매출 성장을 견인하는 일등 공신이 됐다. 이것은 단순한 제품의 성공을 넘어, 소비자의 숨은 욕구를 발견하고 기술로 해결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혁신의 사례다.
현지화, K-푸드의 성공 공식을 쓰다
풀무원의 성공은 단 하나의 히트 상품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그 기저에는 시장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깔려있다. 그 시작은 2016년, 미국 1위 두부 브랜드였던 ‘나소야(Nasoya)’를 인수한 것이다. 풀무원은 ‘한국의 것’을 일방적으로 심으려 하지 않고, 이미 현지인들에게 친숙한 브랜드를 통해 부드럽게 시장에 안착하는 길을 택했다.
이후 풀무원은 미국인의 식문화와 취향을 세심하게 반영한 제품 라인업을 꾸준히 확장했다. 스테이크처럼 구워 먹기 좋도록 물성을 단단하게 만든 ‘엑스트라 펌 두부(Extra Firm Tofu)’, 바비큐나 데리야키처럼 서양인들이 선호하는 소스로 미리 양념해 구운 ‘시즈닝 두부’, 그리고 샐러드나 볶음밥에 바로 넣어 먹을 수 있도록 큐빅 모양으로 자른 ‘토핑용 두부’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제품들은 두부를 낯설게 느끼는 이들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두부의 무한한 활용 가능성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두부로 무엇을 해 먹어야 할까?’라는 질문에 풀무원은 맛있고 간편한 답을 미리 준비해준 셈이다.
숫자로 증명된 리더십, 11년 연속 1위의 위엄
탄탄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풀무원은 미국 시장에서의 리더십을 공고히 했다. 2016년 나소야 인수 이후, 풀무원은 올해로 11년 연속 미국 두부 시장 점유율 1위라는 대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기록한 2,242억 원이라는 역대 최고 매출은 이러한 리더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이러한 성과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과감하고 선제적인 인프라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풀무원은 현재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 풀러튼과 동부 매사추세츠주 아이어 등 총 3곳에 생산 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처럼 광활한 영토에서 신선도가 생명인 식품을 유통하기 위해, 동부와 서부에 각각 생산 기지를 두어 물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한 것이다.
최근에는 동부 아이어 공장의 생산라인 증설을 완료했으며, 서부 풀러튼 공장의 연순두부 생산설비 증설도 추진 중이다. 이는 단순히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 월마트, 타겟, 크로거 등 약 15,000개에 달하는 대형 유통 채널에 더욱 촘촘하게 제품을 공급하며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계산된 포석이다.
문화를 입힌 두부, 'Power of 9' 캠페인
풀무원의 전략이 더욱 빛나는 지점은 제품과 인프라를 넘어 ‘문화 마케팅’으로까지 나아갔다는 점이다. 그들은 두부의 영양학적 가치를 미국 소비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해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Power of 9’ 캠페인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캠페인은 두부 단백질이 인체에서 스스로 합성할 수 없는 9가지 필수 아미노산을 모두 함유한 ‘완전 단백질’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풀무원은 이 과학적 사실을 미국 여자프로농구(WNBA) 선수, 스포츠 영양사 등 건강과 퍼포먼스를 상징하는 인플루언서들과의 협업을 통해 매력적인 스토리로 풀어냈다.
그들의 소셜미디어와 홈페이지에는 두부를 활용한 쉽고 감각적인 레시피 영상이 공유됐다. 캠페인을 통해 두부는 더 이상 채식주의자들의 소박한 식재료가 아닌, 운동선수도 즐겨 찾는 강력한 퍼포먼스 푸드(Performance Food)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얻게 됐다. 이것은 음식을 파는 것을 넘어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가치를 제안하며 소비자와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고차원적인 마케팅 전략이었다.
미래를 향한 발걸음, K-두부의 다음 챕터
미국 시장에서 확고한 리더십을 구축한 풀무원은 이제 더 넓은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기존의 대형마트 등 리테일 채널을 넘어 푸드서비스, 글로벌 외식 프랜차이즈, 식자재 기업 간 거래(B2B) 등 새로운 채널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학교 급식이나 건강 전문 레스토랑 등 신규 채널 발굴을 통해 두부를 미국인의 일상에 더욱 깊숙이 침투시키겠다는 계획이다.
풀무원USA 조길수 대표는 “미국 내 플렉시테리언 인구가 증가하고 육류 대신 고단백 식물성 식품을 섭취하려는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현지 두부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공급 확대를 통해 시장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풀무원의 두부 성공기는 K-푸드의 글로벌 전략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철저한 현지화(Localization), 끊임없는 제품 혁신(Innovation), 그리고 과감한 선제적 투자(Investment)라는 세 가지 요소가 조화롭게 맞물릴 때, 비로소 우리의 음식이 세계인의 식탁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식탁에서 늘 소박하고 친근했던 두부. 그 하얀 순수함 속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이 이제 태평양을 건너 새로운 미식의 역사를 쓰고 있다. K-두부가 그려나갈 다음 페이지는 어떤 맛과 이야기로 채워질까. 그 건강하고 맛있는 여정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Cook&Chef / 길라떼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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