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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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이 다가오는 주방의 공기는 다르다. 찜솥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의 습도, 팬 위에서 고기가 갈색으로 변하며 일으키는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의 고소한 향기, 그리고 도마 위를 두드리는 경쾌한 칼질 소리. 이 모든 감각의 중심에는 언제나 '한우'가 있다. 차례상에 올리는 산적부터 온 가족이 둘러앉아 즐기는 갈비찜까지, 한우는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명절의 격식과 풍요, 그리고 정(情)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하지만 2026년 설을 앞둔 지금, 시장의 풍경은 사뭇 복잡하다. 경기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설 특수'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우 소비 심리는 위축되었다. 반면, 바다 건너 서구권에서는 적색육의 영양학적 가치를 재조명하며 '양질의 단백질'에 주목하고 있다. 쿡앤셰프는 [설 특집] 마지막 순서로, 차가운 시장 현실과 뜨거운 영양학적 관심 사이에서 한우가 갖는 본질적인 가치를 조리 과학과 산업적 관점에서 심층 분석한다. |
'설 특수'의 실종: 냉혹한 시장과 가치 소비의 딜레마
[Cook&Chef = 제조리 기자] 예년 같으면 선물세트 주문과 제수용 고기 구매로 북적였을 마장동 축산물 시장과 대형 마트 정육 코너가 차분하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의 데이터는 이러한 현장의 분위기를 수치로 증명한다. 한우 도매가격은 kg당 2만 원 초반대를 횡보하며 약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명절 대목을 앞두고 소비가 집중되어 가격이 상승하던 전형적인 '설 그래프'가 무너진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경기 불황이라는 거대한 장벽"으로 진단한다. 고물가와 금리 인상 여파로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고가의 한우 구매를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백화점의 프리미엄 선물세트는 그나마 선방하고 있지만, 서민 경제와 밀접한 정육점과 일반 식당의 매출은 저조하다. 공급량이 많지 않음에도 소비 심리 위축으로 가격이 오르지 못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그늘이 명절 식탁에도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역설적으로 한우 산업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수입산 소고기를 이길 수 없는 시대, 한우는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팔아야 하는가? 답은 '신뢰'와 '품질'에 있다. 한우는 국내 생산, 도축, 유통 체계를 기반으로 수입육 대비 압도적으로 짧은 유통 구조를 가진다. '푸드 마일리지'가 짧다는 것은 곧 산화가 덜 된 신선한 지방과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대 소비 트렌드가 '가성비'에서 심리적 만족감을 추구하는 '가심비', 더 나아가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가치 소비'로 이동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한우의 돌파구는 명확해진다.
지방의 재발견: 올레인산과 적색육의 과학
최근 식품 영양학계의 화두는 단연 '지방의 재평가'다. 과거 무조건적인 기피 대상이었던 지방은 이제 '어떤 지방을 어떻게 섭취하느냐'의 문제로 전환되었다. 미국 보건복지부(HHS)가 추진하는 '다시 건강한 미국 만들기(MAHA)' 캠페인 논의 과정에서 적색육을 '고품질 단백질원'으로 재정의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가공식품의 폐해를 줄이고, 원재료 본연의 영양소에 집중하자는 글로벌 헬스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이 지점에서 한우의 경쟁력은 과학적으로 입증된다. 한우는 9가지 필수 아미노산을 균형 있게 함유한 '완전 단백질' 식품이다. 특히 한우의 맛을 결정짓는 마블링(근내지방) 속에는 '올레인산(Oleic acid)'이 풍부하다. 경상대학교 주선태 교수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한우의 올레인산 함량은 47.3%로 미국산(약 40%)이나 호주산(약 38%)보다 유의미하게 높다.
올레인산은 혈중 나쁜 콜레스테롤(LDL) 수치를 낮추고 좋은 콜레스테롤(HDL) 수치를 유지해 주는 단일불포화지방산이다. 즉, 한우의 마블링은 단순히 입안에서 녹는 식감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우리 몸에 유익한 지방산의 저장고인 셈이다. 이는 한우가 단순한 사치재가 아니라, 건강을 위한 '기능성 식재료'로서 접근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대별 맞춤 단백질: 도가니탕에서 우둔살 롤까지
한우의 또 다른 매력은 부위별로 영양 성분과 특성이 확연히 달라 세대별 맞춤 섭취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앞서 2편에서 떡국의 '해체와 재조립'을 다뤘듯, 한우 역시 섭취 목적에 따라 부위를 스마트하게 선택해야 한다.
근육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고령층에게 한우는 생존을 위한 필수 식품이다. 소화 기능이 약한 노년층에게는 등심 구이보다는 '도가니탕'이나 '꼬리곰탕'이 제격이다. 소의 결합조직에 풍부한 콜라겐은 장시간 가열하면 수용성인 젤라틴으로 변성되는데, 이는 체내 흡수율이 높고 소화가 용이하여 기력 회복과 관절 건강에 도움을 준다.
반면, 체중 관리와 근육 유지가 필요한 중장년층과 젊은 층에게는 저지방 고단백 부위인 우둔, 사태, 목심이 추천된다. 1등급 한우 100g 기준, 사태와 우둔의 단백질 함량은 22g에 달해 등심(18g)보다 높다. 퍽퍽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우둔살을 얇게 슬라이스해 신선한 채소를 넣어 만 '한우롤'이나, 사태를 푹 삶아 차게 식힌 '편육 냉채'는 현대인의 '헬시 플레저' 트렌드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메뉴다.
주방의 연금술: 가치를 극대화하는 조리의 과학
좋은 식재료는 훌륭한 조리사를 만났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제조리 기자의 관점에서 볼 때, 한우 요리는 '단백질과 열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과학 실험과도 같다.
명절 음식의 꽃인 갈비찜을 예로 들어보자. 맛의 비밀은 뼈와 살 사이에 붙은 '근막'에 있다. 질긴 근막은 조리 전 겉면의 것은 제거해야 하지만, 뼈에 밀착된 속 근막은 남겨두는 것이 좋다. 물과 함께 장시간 끓이는 습식 조리(Moist-heat cooking) 과정에서 질긴 콜라겐이 부드러운 젤라틴으로 가수분해되며 국물에 깊은 감칠맛(Body)을 더하기 때문이다.
산적이나 꼬치 요리에 쓰이는 우둔, 설도 부위는 '칼집의 미학'이 필요하다. 지방이 적은 근육은 열을 가하면 수축하며 단단해진다. 이때 고기 결(Muscle fiber)의 직각 방향으로 칼집을 넣어 근섬유를 물리적으로 끊어주면, 조리 후에도 부드러운 식감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연육제 없이도 고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조리 과학이다.
보관 또한 과학이다. 남은 생고기는 산소와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산패(Rancidity)와 갈변을 막을 수 있다. 진공 포장하거나 랩으로 밀착하여 0~4℃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면, 자체 효소에 의한 숙성(Aging)이 진행되어 풍미가 더욱 깊어진다. 반면, 이미 조리된 고기는 산화 속도가 빠르므로 가급적 빨리 소비하는 것이 미식의 골든타임을 지키는 길이다.
결론: 식탁 위에서 증명되는 본질
우리는 이번 기획 연재를 통해 설날의 역사적 변천부터 떡국의 영양학적 변화, 놀이 문화의 개인화, 그리고 한우의 본질적 가치까지 살펴보았다. 시대가 변하고 트렌드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명절 식탁이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가장 따뜻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민경천 한우자조금관리위원장은 "미국 정부의 식이지침 변화는 적색육에 대한 과학적 재평가의 신호탄"이라며 "한우의 영양적 가치와 환경적 요소 등 다원적 가치를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우 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이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닌 '가치 경쟁'에 있음을 시사한다.
경기 불황의 한파가 매섭지만,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한우 한 점에는 농가의 땀과 유통의 신속함, 그리고 조리하는 이의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번 설, 당신의 식탁 위에 오를 한우는 단순한 고기 반찬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강함이자, 오랜 시간 우리 민족의 힘이 되어준 든든한 에너지원이다. 화려한 마블링 너머에 존재하는 이 '진짜 가치'를 음미할 때, 비로소 우리의 설날 미식은 완성된다.
Cook&Chef / 제조리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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