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이경엽 기자] “한번 드셔보십시오.”
지난 7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식문화공간 이음’에서 열린 한식진흥원의 ‘한식콘서트’ 현장에서 덕화명란 장종수 대표는 조선 명란이 발라진 빵 한 조각을 청중에게 건넸다. 조심스럽게 입에 넣은 빵에서는 조선 명란 특유의 짙고 짭짤하며 깊은 맛의 풍미가 퍼졌다. 발효의 향과 짠맛의 층위, 그리고 여운까지 남는 그 맛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기억의 단서’처럼 느껴졌다.
이 장면은 단순한 강연의 일부가 아니었다. 기억을 복원하고, 미각을 넓히며, 전통과 현대를 잇는 한식 문화의 실험이자 실천의 자리였다. 매달 열리는 ‘한식콘서트’는 그렇게 시민과 전문가, 전통과 현재, 식재료와 담론을 연결하고 있었다.
한식, 무대 위로 올라오다: 시민과 강연이 만나는 구조
‘한식콘서트’는 2022년 한식문화공간 ‘이음’의 개관과 함께 시작됐다. 한식진흥원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식 콘텐츠의 다양화와 대중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한식을 전문적으로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들과 함께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열린 소통의 장”이라는 것이 기획 의도다
이 프로그램은 주제 선정과 강연자 섭외 모두 한식진흥원의 내부 기획팀이 주도한다. 기획 전시나 정책 사업과 연계해 콘텐츠를 구성하며, 매회 강연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채워진다. 외부 제안보다는 기획 방향의 일관성과 실행력을 중시하는 구조다.
7월 회차 강연은 덕화명란 장종수 대표의 ‘명란 이야기’였다. 장 대표는 명태가 약 400년간 한반도의 국민 생선이었음을 강조하며, 분단과 전쟁 이후 단절된 ‘미각의 기억’을 복원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시식 시간에는 조선식 명란을 활용한 빵을 직접 제공하며, 청중에게 "단순한 맛을 넘어선 기억과 메시지를 느껴보라"고 말했다.
매달 30명, 기억을 나누는 공동체: 참여자 중심의 한식 콘텐츠
한식콘서트는 사전 예약으로 30명을 모집하며, 당일 현장 접수를 포함해 회당 평균 40명 내외가 참여한다. 참가자는 홈페이지를 통해 5,000원의 참가비를 낸 후, 현장 참석 시 전액 환불받는 구조다. 이는 노쇼 방지를 위한 장치이자, 참여자의 자발성을 유도하는 장치다.
행사 종료 후에는 QR코드를 활용한 만족도 조사가 이루어진다. 회수율은 들쑥날쑥하지만, 실시간 피드백 수집이라는 구조적 강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공공기관 프로그램으로서의 실용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다.
현장에는 반복 참여자도 있었다. 50대 참석자 김문경 씨는 “음식 하나로 이렇게 많은 역사와 문화가 설명될 수 있다는 점에 감동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30대 남성 심찬 씨 역시 “단순한 식재료가 아닌,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관점을 접할 수 있어 인상 깊었다”며 다음 회차에도 참여하고 싶다고 전했다.
한식진흥원은 상반기에만 2월부터 6월까지 총 4회차를 진행했으며, 각각 궁중음식·민속학·유교 종가 음식·딸기농업 등 주제를 다뤘다. 하반기에는 전시 연계 강연을 중심으로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작은 무대, 깊은 울림: ‘한식 대중화’의 실제 방식
‘한식 대중화’는 거창한 캠페인이 아니다. ‘한식콘서트’는 조용하지만 일관된 방식으로 콘텐츠를 축적해 나가고 있다. 매달 30명씩, 1년이면 300명, 3년이면 1,000명이 넘는 시민이 한식의 철학과 이야기를 체험한다. 단순히 “맛있다”를 넘어 “왜 맛있는가, 왜 존재하는가”를 묻는 자리다.
이러한 축적은 결국 시민의 입과 생각 속에 ‘한식’이라는 두 글자를 각인시킨다. 말 그대로 ‘공연(performance)’이 아니라,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대화로서의 한식이다. 매달 반복되는 이 대화가 계속된다면, 한식은 음식 그 이상의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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