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디저트 시장의 유행은 색으로 기억된다. 한동안 해외 카페와 베이커리 시장을 채운 색은 말차의 녹색이었다. 말차 라떼와 말차 케이크, 말차 쿠키는 차분하고 건강한 이미지와 함께 소비됐다. 최근에는 그 자리에 보라색이 들어오고 있다. 해외에서는 필리핀계 식재료인 우베가 음료와 디저트 메뉴로 확산되고, 국내에서는 자색고구마가 라떼와 베이커리 메뉴의 색감을 바꾸고 있다.
색은 이제 음식의 부가 요소가 아니다. 소비자는 맛을 보기 전에 먼저 색을 본다. 녹색은 쌉싸름함과 절제된 단맛, 건강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고, 보라색은 낯선 시각성과 부드러운 단맛을 예고한다. SNS를 통해 음식 이미지가 빠르게 확산되는 환경에서 색은 메뉴를 고르는 첫 번째 신호가 됐다.
이 흐름을 한식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다른 이야기가 열린다. 색으로 음식을 소비하는 현상은 새롭지만, 색으로 맛과 계절, 격을 표현해 온 감각은 오래됐다. 한식은 오래전부터 음식의 색을 통해 재료의 조화와 계절감을 드러냈다. 비빔밥, 구절판, 잡채, 신선로, 오색 고명은 색이 한식의 장식이 아니라 맛과 균형을 이루는 요소였음을 보여준다.
한국 전통 색채의 바탕에는 청·적·황·백·흑의 오방색이 있다. 이 다섯 색은 자연과 방위, 계절과 질서를 설명하는 색이었다. 여기에 기본색이 섞여 만들어지는 간색도 함께 쓰였다. 녹색과 자색은 그 간색의 영역에 놓인다. 오늘날 디저트 시장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녹색과 보라색은 한식과 한국 전통문화 안에서도 오래전부터 나름의 의미를 지닌 색이었다.
녹색과 보라색이 한국 전통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도 함께 보면 이해가 깊어진다. 서양에서 보라색이
왕족과 귀족의 색으로 기억돼 왔다면, 한국에서도 자색은 단순한 장식색이 아니었다. 신라에서는 관등에 따라 공복의 색을 달리했고, 높은 관등에 속한 이들이 자색 옷을 입었다. 고려 역시 백관의 공복을 자색, 단색, 비색, 녹색으로 나누었다. 색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신분과 질서를 드러내는 기준이었다.
녹색도 제도와 예복 안에서 의미를 가졌다. 조선시대 관복 체계에서는 품계에 따라 옷의 색이 달라졌고, 녹색은 일정한 품계와 격식을 나타내는 색으로 쓰였다. 여성 예복과 의례복에서도 녹색은 자주 등장했다.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색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질서와 예의 안에서 사용된 색이었다.
이처럼 과거의 색이 신분과 격식을 드러냈다면, 오늘날의 색은 취향과 감각을 드러낸다. 역할은 달라졌지만 색이 음식을 기억하게 하고, 특정한 이미지를 불러낸다는 점은 이어져 있다. 지금의 말차와 우베 유행도 단순히 새로운 식재료의 등장이 아니라, 색을 통해 맛을 먼저 상상하게 만드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한국의 식문화로 시선을 옮기면 이 흐름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한국의 녹색 식문화는 녹차를 비롯해 쑥, 미나리, 냉이, 매생이 같은 재료의 감각으로 이어져 왔다. 녹차의 은은한 떫은맛, 쑥의 향, 봄나물의 산뜻함, 매생이의 바다 향은 한국 음식에서 녹색이 단순한 색이 아니라 계절과 향을 담는 방식이었음을 보여준다.
보라색 역시 한국의 식재료 감각에서 멀지 않다. 해외에서 우베가 낯선 이국적 식재료로 소비된다면, 한국에서는 자색고구마가 익숙한 고구마의 단맛을 새로운 색으로 보여준다. 고구마는 군고구마, 고구마맛탕, 고구마죽, 고구마떡처럼 식사와 간식의 경계를 오가며 한국인의 일상에 자리해 온 재료다. 자색고구마는 이 익숙한 단맛에 보라색이라는 강한 시각성을 더한다.
우베와 자색고구마는 같은 식재료가 아니다. 우베는 필리핀 디저트에 오래 쓰여 온 보라색 마 계열 식재료이고, 자색고구마는 고구마다. 그러나 소비 시장에서는 두 식재료가 모두 ‘보라색 디저트’라는 공통된 시각 코드 안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우베가 글로벌 카페 시장의 새로운 소재로 떠오르고, 한국에서는 자색고구마가 고구마에 대한 익숙한 기억을 현대적인 디저트 색감으로 바꾸고 있다.
결국 말차의 녹색에서 우베의 보라색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음식 트렌드가 맛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음식은 먹기 전에 먼저 보이고, 보이는 순간 이미 맛의 이미지를 만든다. 하지만 색으로 음식을 이해하는 감각은 새로 생긴 것이 아니다. 한식은 오래전부터 색으로 맛과 계절, 조화와 격식을 말해 왔다. 우베와 자색고구마가 주목받는 지금의 보라색 디저트 흐름은 새로운 유행이면서도, 색으로 음식을 기억해 온 오래된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장면이다.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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