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추·금사과는 기본...곡물 수입 의존도 높은 한국 큰 위기
공급망 다변화·스마트농업 등 생존 위한 철저한 대책 마련해야
사진= 미국 국립해양대기청 NOAA Satellites
[Cook&Chef = 조소현 기자] 여름이 시작될 즈음, 기상 뉴스에서 엘니뇨를 접하는 것은 낯설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최근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들이 잇따라 ‘슈퍼 엘니뇨’를 언급하면서 국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엘니뇨는 적도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아지는 현상이다. 보통 2~7년 주기로 발생하며 1~2년간 지속된다. 엘니뇨는 전 세계 대기와 해양 순환에 영향을 미쳐 기후 패턴을 바꾼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주요 곡물 생산지인 동남아시아와 호주에서는 가뭄과 폭염이, 남미 지역에서는 폭우와 홍수 등 이상기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처럼 지역별 강수량과 기온이 평년과 달라지면서 세계 식량 생산과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슈퍼 엘니뇨’는 무엇일까. 슈퍼 엘니뇨는 해수면 온도 상승 폭이 2℃ 이상으로 커진, 이름처럼 강한 형태의 엘니뇨를 말한다. 단순히 바닷물이 더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후 시스템 전반에 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슈퍼 엘니뇨는 전세계 식량에 큰 위험 요인이다.
미국 CNN방송은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국립해양대기청 (NOAA) 기후예측센터가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 엘니뇨가 이미 공식적으로 시작됐으며, 슈퍼 엘니뇨로 발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번에 올 슈퍼 엘니뇨는 1950년 이후 가장 강력한 수준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슈퍼 엘니뇨가 우리 식탁에 미칠 영향
슈퍼 엘니뇨가 예고된 가운데, 우리의 식량은 안전할까. 국립기상과학원장과 기상청장을 지내고, 평생 기후와 식량을 연구해 온 남재철 서울대 교수에게 물었다.
남 교수는 올가을부터 슈퍼 엘니뇨의 영향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을 비롯한 국제 기상기관들의 관측 결과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슈퍼 엘니뇨가 현실화되면 세계 주요 곡물 생산국들이 폭염과 가뭄, 홍수 등 극한기상으로 생산량 감소를 겪고, 자국 물가 안정을 위해 수출 제한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국제 곡물 시장의 불안이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국제 식량시장의 충격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전체 곡물의 약 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세계 공급망의 불안은 곧 우리 식탁의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 농업 역시 이상고온과 병해충 증가 등으로 생산량 감소가 나타날 경우, 해외 공급 차질과 국내 생산 감소가 동시에 발생하는 이중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 남 교수의 진단이다.
국민들이 가장 먼저 체감하게 될 변화는 식품 가격이다. 남 교수는 배추와 무, 상추, 사과 등 채소와 과일류가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반복되고 있는 ‘금배추’, ‘금사과’ 현상 역시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밀과 옥수수, 식용유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원료 가격 상승은 가공식품 가격뿐 아니라 사료 가격 인상을 거쳐 육류 가격 상승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다만 현재 소비되는 식품 상당수는 이미 생산·비축된 물량인 만큼 충격은 올해보다 내년 이후 더욱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또, 남 교수는 기후 위기를 단순한 농산물 가격 상승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10년 세계 주요 곡물 생산국의 이상기후로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집트에서는 식량 가격이 크게 올랐다. 이는 기존의 실업과 빈부격차, 장기 독재에 대한 불만을 증폭시키며 결국 ‘아랍의 봄’으로 이어졌다. 남 교수는 이 사례를 들며 식량위기는 일시적인 물가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안정성마저 흔드는 식량안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급변하는 기후, 식량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남 교수는 기후변화에 강한 품종 개발과 스마트농업 확대, 안정적인 농업용수 확보, 곡물 비축 확대, 수입선 다변화 등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식품업계 역시 원료 조달 경로를 다양화하고 공급망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하며, 생산량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생산·유통·소비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식량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농업, 배양육과 대체육 등 푸드테크 산업이 식량안보의 중요한 축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미래 식량 문제는 농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과 산업, 공급망이 결합된 국가 경쟁력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남재철 교수는 저서와 다수의 강연을 통해 기후 위기의 시급함과 식량안보 문제에 대해 전하고 있다. 기후와 식량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경고는 공포를 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위기에 대비할 시간을 벌기 위해 우리사회에 울리는 경보음이다. 식량안보를 더 이상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닌 현재의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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