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직장을 옮길 때 어디로도 결정을 못하고 고민할 때 사용하던 방법은, 멘토를 3명 정도 선정하여 나의 모든 일을 의논하는 것이다. 사람이 평생 살면서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의논할 사람은 부모님, 친구, 배우자 등일 것이다. 이렇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해도 답이 안 나올 때가 많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멘토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나의 멘토들은 긴 안목으로 보고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가야할 길에 대해 조언해준다. 물론 판단은 나의 몫이지만, 멘토들의 조언이 나의 판단에 큰 바탕이 되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먼저 도전적인 정신으로 자기 개발을 위해 직장을 옮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직장을 너무 자주 옮기면 자기 관리가 잘 안 되어 나중에 인정받아야 할 시점에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따라서 자주 옮기는 것은 좋지 않다.
직장을 옮김으로써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에 응당하는 좋은 경험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직장을 잘 옮겼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평가는 나중에 알 수 있다. 대략 10년 후쯤, 되돌아보았을 때, 직장을 바꾼 것이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었고,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내용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면 성공했다고 본다.
직장을 옮길 때, 사장이나 부사장과의 면담만으로 쉽게 직장을 옮기면 나중에 많은 후회를 한다. 특히 채용 조건 등을 꼼꼼하게 서류에 기입해야만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좋은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아무 생각 없이 옮기면, 나중에 낮은 급여를 받아도 할 말이 없다. 기술자의 특징 중 하나가 조리사들은 너무 순진한 면이 많아서, 단순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어떤 회사와 계약할 때 내 마음 같은 생각으로 그들을 대하면 안 된다. 내가 그들을 생각하는 것만큼 그들은 순진하지 않다. 왜냐하면 회사나 조직은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이익이나 효과를 내야 하므로 어쩔 수 없다. 내가 창업론을 강의할 때 보면, 주방장이 월급의 최소 10배 정도 이익을 내야만 조직이 만족한다고 한다.
직장을 자주 옮기는 것은 좋지 않다. 어떤 셰프는 나이가 50인데 이력서를 보니 30군데는 옮겨 다닌 것이었다. 어떤 직장은 두 달, 세 달 근무하고 다른 직장으로 바뀐 것이 신기하여 필자가 물어본 결과 본인은 옮기려 하지 않았는데 분위기 때문에, 어떤 때는 의리 때문에 옮겼다고 한다. 자기의 선배가 자리를 옮기니 따라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주방장이 바뀌면 모두 그 주방장을 따라간다. 주방이 무슨 마피아조직이냐고 나한테 이야기한 외국인 셰프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빨리 고쳐야 한다. 주방장이 바뀌면 바뀐 주방장은 내 사람이 아니라고 못살게 구는 경우도 있고, 왜 먼저 있던 주방장을 따라가지 않았냐고 하는 것이 우리 주방의 분위기다. 정말 좋지 않은 풍토인데 아직도 바뀌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봉급 10만 원 더 준다고 아무 생각 없이 옮기는 직원을 보면 좀 한심스럽기도 하다. 젊었을 때는 돈보다 자기 자신에게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한 직장에서 많은걸 배우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한 직장에서 조직을 이끌어 가는 방법, 메뉴 작성 방법, 식재료 관리 방법, 직원 평가 방법, 타부서와의 관계, 원가관리 방법, 경쟁사 조사방법, 서비스맨과의 관계, 업장관리 방법 등은 한 직장에서 있으면서 배우는 것이 좋다. 필자 생각에는 3년에서 5년 정도 있어야 나중에 직장을 옮겨도 경력 인정을 받는다.
직장을 옮기기는 나이가 어릴 때가 편하다. 봉급도 적고 직책도 없고 이 사람이 없어도 주방이 움직인다고 판단하면 금방 그만두어도 무방하다. 그런데 나이가 먹어서 주방을 그만두려면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새 직장에서의 성공 여부도 중요하고, 결혼했다면 가족의 생계도 고민해야 한다. 필자는 직장 옮길 때 점집에 가서 점까지 보았는데, 결론은 본인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후회하지 말아야한다.
이직한 후에 후회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는데 대개는 욕심 때문에 후회한다. 본인은 모든 혜택을 다 얻으면서 직장을 옮기려는 생각을 하는데, 세상은 만만치 않다. 꼭 한 가지는 양보를 하고 직장을 옮겨야 성공한다.
좋은 직장 자리는 시기와 때가 일치하지 않는 법칙이 있는 것 같다. 회사에서 5월말까지 명퇴하면 20개월 치의 봉급과 그 외의 인센티브를 준다고 하면, 새로운 직장은 12월에 출근하게 된다. 몇 달 동안은 놀아야 하므로 손해가 나서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떤 때는 전 직장에서 야근하고 새로운 직장에 가서 근무 하는 경우도 있다. 이유는 새로운 사람을 보충하기 전에 나가면 전 직장에 피해를 주면 안 되고, 새로운 직장에는 일할 사람이 없고 참 난처한 일이 많이 발생한다.
직장 그만두고 전 직장에 잘 안 가는 것도 조리사들은 모두 알고 있다. 나 역시 롯데 호텔은 자주가도 신라호텔은 안 가게 된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신라에 있을 때 욕먹을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다.
필자는 하얏트 그만둘 때 신라호텔로 왔는데 내 이야기를 많이들 한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니 아무것도 아닌데 그 당시는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독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꼭 신라호텔에서 성공하여 지금 나에게 험담하는 셰프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에 그 당시 그런 시련이 없었다면 평범한 주방장으로 살았을 것 같다. 내가 주위에 있는 셰프들과 비교해 보아도 다양한 도전과 다양한 일을 한 결과가 지금의 위치가 아닐까. 직장을 잘 옮기면 무조건 성공이다. 직장을 잘못 옮기면 실패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저작권자ⓒ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