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픔이 있는 섬, 4,500명이 살던 섬, 어느덧 1,100명만 거주
- 핫스팟으로 떠오른 서해안 국가지질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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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등재를 앞둔 대월습곡 |
[Cook&Chef=임요희 기자] 전북 부안 격포항에서 출발하면 만날 수 있는 위도(蝟島)는 섬 형태가 고슴도치를 닮아서 고슴도치 ‘위(蝟)’자를 쓰는 섬이다. 언뜻 고슴도치 서식지인가? 라고 생각하겠지는 당연히 아니다. 대신 섬 곳곳에는 많은 고슴도치 조형물을 발견할 수 있다.
국내 섬 중에서도 아름답기가 으뜸이라는 위도. 한때는 국내 3대 조기파시로 이름을 날리면서 4,500명이나 거주하던 번화한 섬이었지만 지금은 주민 수가 1,100명으로 줄어 조용한 섬마을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쇠락한 마을이 주는 쓸쓸함과 지각변동의 신비함이 기이하게 어우러지는 ‘위도’. 흰 눈발 날리는 겨울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에 안성맞츰인 섬여행지이다.
위도로 가는 배는 부안 변산반도 격포항에서 출발한다. 하루 4회 배편을 운행하며 첫 배가 오전 8시 5분에, 막배가 오후 4시 5분에 있다. 격포항에는 이름도 유명한 채석강(彩石江)이 자리 잡고 있어 배 시간을 기다릴 겸 돌 구경하기 좋다.
아름다운 바위가 있는 강이라는 뜻의 ‘채석강’은 중국 장강의 지류에서 이름을 따왔다. 긴 강줄기가 기암괴석을 파고드는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이태백이 술잔을 기울이며 놀았다는 희미한 전설이 있기도 하다. 채석강은 강이 아닌 바다다. 채석강 절벽은 밀물 때 물속에 잠겼다가 썰물 때 모습을 드러내는데 물이 완전히 빠지면 바닥까지 걸어 내려가 해식동굴을 관찰할 수도 있다. 채석강 절벽은 바다로 흘러드는 닭이봉 기슭의 일부지만 긴 세월 파도에 씻기면서 퇴적암 뼈대가 드러난 것이다.
채석강의 퇴적암 두께는 300m에 달하며, 가로줄의 연속체 같지만 자세히 보면 줄무늬가 분리된 단층 지형을 품고 있다. 아주 오래전 이곳에서 대단위 화산활동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화산이 폭발하면서 주변 땅이 꺼지고 땅이 주저앉아 지층이 동강 난 것. 대단한 신비로 다가오지만 사실 채석강은 서해안 지오트레일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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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롭던 시절의 흔적만 남아있는 위도의 모습 |
‘물 반, 조기 반’이었던 위도 칠산어장
격포항과 위도를 잇는 바닷길은 총 14.5km. 페리로 50분 거리다. 위도는 8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가운데 5개가 사람이 사는 유인도다. 1960년대 말까지 국내 3대 조기 파시로 이름을 날리면서 치도리, 파장금 일대에 다방, 술집, 여관이 즐비했는데 전국에서 몰려든 장사치들이 지은 임시막사까지 합세해 섬 전체가 바글바글했다.
흔히 굴비 하면 영광 법성포를 꼽지만 조기가 실제로 잡히는 곳은 칠산어장이다. 칠산어장은 영광군에 속한 일곱 개 무인도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구체적으로 위도 앞바다를 가리킨다. 1962년까지 위도가 행적구역상 전남 영광군에 속해 있어 칠산 바다에서 잡힌 굴비를 영광굴비라고 불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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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도 진리 ‘섬마을 횟집’의 간장게장. 이곳에서 잡히는 꽃게만으로 만든다. |
조기는 동중국해에서 월동을 한 뒤 흑산도에 들렀다가 산란을 위해 이동하는데 위도에서 잡힌 것이 알이 꽉 차 있어 가장 맛도 좋고 값도 비싸다. 조기들이 먼바다를 헤엄쳐 위도로 이동하는 것은 전라북도의 3대 하천인 금강, 만경강, 동진강이 위도 앞바다에서 합류하면서 조기의 먹이인 플랑크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물고기의 먹이가 풍부하다 보니 위도에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아구, 꽃게, 갑오징어, 광어, 멸치, 물메기 등 다양한 어종이 포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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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안 국가지질공원 ‘위도 대월행와습곡’ |
지구의 신비를 보여주는 ‘위도 대월행와습곡’
위도해수욕장 남쪽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지질학자들을 깜짝 놀래킨 아름다운 습곡 지형이 있다. ‘대월행와습곡’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퇴적암 지층이 원을 그리며 안으로 말려 들어간 형상이다. 바위에 나이테란 게 있으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변산반도가 서해안 국가지질공원으로 선정된 게 2017년의 일이다. 어떻게 이렇게 기이하고 아름다운 장소가 그때까지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한 건지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높이 30m, 길이 100m의 대월습곡의 하단부는 시루떡 모양으로 가로줄이 나 있고 상단부는 김밥을 말다 만 것처럼 하늘로 들려 있다. 이런 형상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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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도해수욕장과 망월봉 |
지구의 나이는 46억 살로 알려져 있다. 이 긴 세월 동안 지구는 껍질에 해당하는 지각들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변화를 겪었다. 대륙판과 해양판이 충돌하면 밀도가 낮은 해양판이 아래쪽에 깔리는데 이때 대륙판인 유라시아판이 들리면서 대월습곡의 퇴적층을 드러낸 것으로 보고 있다. 대월습곡의 퇴적층은 안산암, 응회암, 이암, 세일암 이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위도해수욕장에서 대월습곡 가는 길은 ‘대월지오트레일’로 소나무와 동백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트래킹을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또한 이 길에는 야생고사리가 지천으로 나서 원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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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도 문화해설사의 사진첩에 담긴 공룡알 화석 |
공룡의 땅이었던 위도
2021년 말 대월습곡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지질탐방로가 서해안 국가지질공원 위도에 탄생했다. 최근 학계에 보고된 위도 진리 공룡알 화석지가 그곳이다. 이곳은 중생대 백악기 공룡알 둥지가 모여 있는 곳으로 바다 저편 ‘임수도’가 바라다보이는 개들넘 전망대와 연결된다.
임수도는 격포항에서 위도에 이르는 뱃길 정중앙에 놓인 섬으로 조류 충돌이 잦다 보니 부근을 지나는 배들이 종종 사고를 당했다. 1993년 서해훼리호가 침몰한 곳도 임수도 해역이다. 고전소설 ‘심청전’에 보면 중국과 조선을 오가던 장사치들이 선박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인당수 앞바다에 인신 공양을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위도 사람들은 그 인당수를 임수도로 여기고 있다. 실제로 임수도 앞바다에서는 삼국시대, 고려, 조선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으며, 위도 주민이 임수도 해안가에서 백제시대 석상을 건져오기도 했다. 이 석상은 사람을 대신해 용왕에게 바쳐진 제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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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수도가 바라다보이는 개들넘 전망대 |
바로 이 임수도를 조망하는 개들넘 전망대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공룡알 화석지에 닿게 된다. 공룡알은 후기 백악기에 해당하는 8,500만 년 전, 강이 범람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공룡알은 길이 12~18cm의 검은색 반구체 형태이며 알 안팎을 붉은 이암층이 채우고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알은 30개에 이르나 아무 때나 공룡알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물이 빠진 후에야 망원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육지의 땅과 바다의 땅이 부딪혀 만들어진 신비의 섬 위도. 한때는 전국의 돈이 몰려드는 대형 어시장이었고, 한때는 심청의 한이 서린 땅이었으며, 더 전에는 공룡의 땅이었다. 어느덧 한적한 섬마을로 돌아왔지만 이만한 사연과 스토리를 간직한 섬은 다시 만나기 힘들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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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도가 다시금 웅비의 나래를 펴길 |
2022년을 마감하고 요즘, 아픔을 품고 있는 섬, 천혜의 고독을 품고 있는 섬, 위도에서 나만의 겨울을 느껴볼 생각이 있다면 변산반도 부안 격포항에서 떠나는 페리호에 가만히 자신을 위탁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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