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 노동의 숨을 고르고 맛으로 고하는 감사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5-09-06 09:30:31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이경엽 기자] 오늘(6일)은 음력 7월 보름, ‘백중(百中)’이다. 농번기의 고비를 넘긴 농촌은 잠시 호미를 내려놓고, 익어가는 과일과 곡식 앞에서 ‘감사’를 상 위에 올린다. 집집마다 사당에 올리던 천신(薦新), 장터를 가득 메운 백중장(百中場), 머슴에게 새 옷과 돈을 쥐여주던 ‘머슴날’, 그리고 장원이 난 집 머슴을 소등에 태워 마을을 도는 호미씻이. 의례와 놀이, 노동의 쉼이 한데 얽힌 이 날의 상차림은 유난히 소박하고, 그래서 단단하다.
백중의 이름과 뿌리, 의례에서 잔치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교류센터는 “백중(百中)은 음력 7월 보름에 드는 속절이며, 백종(百種)·중원(中元), 또는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고 밝힌다. 또 “백종은 이 무렵 여러 과실과 채소가 많이 나와 ‘백 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는 데서 유래했고, 중원은 도가에서 말하는 삼원(三元)의 하나로 이날 천상의 선관이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는 전승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또한 “망혼일이라 한 까닭은 돌아가신 이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술·음식·과일을 차려 놓고 천신을 드렸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불가의 풍속도 겹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불제자 목련이 아귀도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오미백과를 공양한 고사가 전하며, 이로부터 우란분회가 시작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의식이 민간에 널리 퍼졌으나 조선 이후에는 사찰 중심으로 수렴되었다.
김정숙 작가의 『열두 달 세시풍속과 절기음식』은 “불가에서는 7월 15일에 천도제를 올려 망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고, 민가에서는 달밤에 채소·과일·술·밥을 차려 놓고 명복을 빌었다”고 기록한다. 백중의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죽은 이와 산 자를 잇는 공양이었다.
밭에서 얻은 제철 음식, 소박하지만 든든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교류센터는 “밀을 빻아 밀전병과 밀개떡을 해 먹고, 수수나 감자를 찧어 떡을 하며, 호박철에는 호박부침을 별미로 해 먹었다”고 적는다. 곡물과 전분, 제철 채소가 주를 이루는 상차림은 더위에 지친 몸에 부담을 덜 주면서도 에너지를 보충한다.
경남 지역에는 ‘백 가지 나물’을 무쳐 먹는 풍속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백 가지를 다 갖추기 어려워 “가지 껍질을 벗겨 희게 만든 ‘백가지(白茄子)’로 대신했다”는 전승이 남아 있다. 나물 무침은 된장·소금·참기름만으로 충분하다. 단출한 양념 속에서 제철 잎과 열매의 향이 살아난다.
바삭한 부각, 고소함으로 채운 잔치 반찬
김정숙 작가는 『열두 달 세시풍속과 절기음식』에서 부각을 “제철 해초·잎채소에 찹쌀풀을 발라 말렸다가 기름에 튀긴 것”이라 설명한다. 김·다시마·깻잎·가죽잎·국화잎 등이 대표적이다. 부각은 기름 속에서 하얗게 부풀어 오르며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향을 남긴다. 같은 맥락에서 찹쌀풀을 바르지 않고 튀긴 튀각도 있었다.
이 바삭한 반찬들은 상의 균형을 잡아준다. 큰 음식이 아니라 작은 곁반찬이지만, 여러 젓가락이 모여드는 자리에서 부각은 ‘잔치 반찬’으로서 손색이 없다. 술상과 손님상에 빼놓을 수 없던 것도 그 때문이다.
물가와 바다의 맛, 제주의 빅개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전남 어촌에서는 소라·다슬기가 제철이었고, 제주에서는 바닷고기 ‘빅개’를 잘게 썰어 양념한 빅개회를 먹었다”고 전한다. 민속적으로도 백중 무렵에는 다슬기국이 상에 자주 올랐다. 술과 함께하는 백중의 장터·잔치에서 숙취 해소와 피로 회복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교류센터에 따르면 “제주도 사람들은 백중날에 살찐 해산물이 많이 잡힌다고 믿어 쉬지 않고 밤늦도록 해산물을 채취했고, 한라산의 ‘백중와살’ 산신에게 산신제를 지내기도 했다.” 농경의 절기임과 동시에 해산물의 절기이기도 했던 셈이다.
공동체가 만든 상, 나눔으로 완성되는 음식
백중은 공동체의 날이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교류센터는 “이날은 그해에 농사가 가장 잘 된 집의 머슴을 뽑아 소에 태워 마을을 돌며 위로하며 논다. 집집마다 술과 안주를 내놓았고, ‘백중날 머슴 장가간다’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기록한다. 경북에서는 이를 풋굿, 호남에서는 질꼬내기라 불렀다. 장원집에서 음식과 술을 내어 모두가 함께 위로받는 구조다.
좋은 해에는 음식이 넉넉했고, 흉년이 든 해라도 상은 비지 않았다. 덜어내고 나누는 방식으로, 공동체는 위기를 건넜다. 상 위의 음식은 그 자체로 농민의 노동과 공동체의 연대를 보여주는 기록이었다.
여름 끝자락의 감사의 기술
백중의 상차림은 엄숙한 의례와 유쾌한 잔치가 동시에 깔려 있다. 연잎찰밥의 맑음과 호박부침의 소박함, 부각의 바삭함과 다슬기국의 깊은 국물, 그리고 바다의 회까지. 이 음식들은 죽은 이를 위로하고 산 자를 위로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로한다.
오늘날 백중의 풍습은 희미해졌지만, 상차림의 지혜는 여전히 유효하다. 제철의 힘을 단순하게 담고, 나눔으로 맛을 완성하는 방식. 여름의 끝자락에 차린 그 소박한 기술이야말로 백중 음식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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