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창포 향에 몸을 씻고, 수리취떡으로 여름을 맞다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 2026-06-18 16:32:22
[Cook&Chef = 서진영 기자] 음력 오월 초닷새, 6월 19일은 수릿날, 곧 단오다. 조선시대 설날·한식·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양의 수인 다섯이 겹치는 이날은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다. 봄기운이 물러가고 햇볕과 습기가 강해지는 시기, 사람들은 창포 향으로 몸을 맑게 하고 수리취떡, 앵두화채, 제호탕으로 여름의 문턱을 건넜다.
‘단(端)’은 처음, ‘오(午)’는 다섯을 뜻하는 ‘오(五)’와 통한다. 오월 초닷새라는 날짜 안에 양의 기운이 겹친다. 수릿날, 천중절, 중오절, 단양이라는 이름도 이날의 성격을 말한다. ‘수리’에는 높음, 신성함, 태양의 뜻이 있다. 수릿날은 태양의 힘이 큰 날이자,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세시 명절이다.
음력 오월에는 모내기가 시작되고, 보리 수확도 겹친다. 더위와 습기가 강해지는 시기이기에 창포로 액을 막고, 그네와 씨름으로 몸의 힘을 펼치며, 부채로 더위를 준비했다. 절식 또한 이 계절을 건너는 방식 가운데 하나다.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풍속은 정화와 벽사의 뜻을 가진다. 향이 강한 창포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식물이다. 조선 후기 세시기인 『열양세시기』에는 아이들이 창포를 캐어 끓인 물로 머리를 감고, 창포 뿌리 끝에 주사를 칠해 머리에 꽂거나 허리에 찼다는 기록이 있다. 여름의 병과 액을 앞두고 향으로 몸을 맑게 하는 의례다.
창포비녀에는 수(壽)와 복(福)을 새겼다. 끝을 붉게 칠해 머리에 꽂기도 했다. 향은 액을 막고, 붉은색은 사악한 기운을 밀어내며, 글자는 장수와 복을 빈다. 새 옷을 입고 몸을 단장하는 단오장 또한 같은 성격을 지닌다. 수릿날의 단장은 꾸밈보다 의례에 가깝다. 몸을 깨끗이 하고 좋은 기운을 받으려는 세시풍속이다.
놀이는 그네뛰기와 씨름으로 대표된다. 그네뛰기는 몸을 높이 올리며 오월의 양기를 몸으로 느끼는 놀이이고, 씨름은 농사철에 필요한 힘과 마을의 활력을 겨루는 자리다.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은 곧 깊어질 더위를 앞둔 선물이다.
수리취떡은 단오를 대표하는 절식이다. 오월 초닷새에는 수리취나 쑥을 삶아 멥쌀가루에 섞고, 쪄낸 뒤 떡살로 무늬를 찍어 먹었다. 수리취를 넣으면 수리취절편, 수레바퀴 모양을 찍으면 차륜병, 쑥을 넣으면 애엽병이라 부른다. 『동국세시기』에는 산에서 자라는 수리취를 뜯어 떡을 해 먹고, 쑥으로도 떡을 만들어 수레바퀴처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수레바퀴 무늬는 차륜병의 핵심이다. 바퀴는 둥글게 돌고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로, 태양의 형상과 계절의 순환, 오월의 강한 양기를 한 문양 안에 담는다. 흰 쌀가루에 푸른 잎을 섞고 바퀴 모양을 찍은 떡은 먹는 기원의 음식이다. 초록빛 잎의 향, 둥근 문양, 오월 초닷새의 시간 감각이 한 조각의 떡 안에 표현된다.
떡살 문양은 크게 기하문, 동물문, 식물문, 문자문으로 나뉘며, 그 뜻은 장수, 풍요다산, 벽사, 부귀,
초복을 빈다. 장수 기원문에는 직선, 살창, 꽃, 수(壽) 자 문양이 쓰인다. 길게 뻗은 선과 끊기지 않는 살창 문양은 오래 사는 삶을 뜻하고, 국화 같은 꽃 문양도 장수의 상징으로 쓰인다.
풍요다산을 비는 문양에는 삼각, 사각, 회(回) 자, 나비가 있다. 삼각은 재생, 사각은 대지와 생산력, 회(回) 자는 반복과 생성의 뜻을 담고, 나비는 금슬과 기쁨을 나타내는 길상 문양이다. 벽사 기원문에는 만(卍) 자와 옴 문양이 쓰이며, 나쁜 기운을 물리치려는 뜻을 가진다. 부귀 기원문에는 부귀(富貴) 자와 물고기 문양이 있고, 초복 기원문에는 복(福) 자를 여러 형태로 새긴다. 떡살은 떡을 꾸미는 도구가 아니라, 먹는 절식 위에 복과 장수, 벽사의 뜻을 새기는 도구다.
수리취와 쑥은 건강, 벽사, 더위에 대한 바람을 함께 품는다. 향이 있는 잎을 찧어 떡에 넣고, 길상 문양을 찍어 나누는 일. 그것이 수릿날의 떡 문화다. 차륜병은 양기가 왕성한 날, 푸른 향초와 떡살 문양으로 여름의 기원을 새긴 음식이다.
앵두화채는 단오 무렵 익는 앵두에 오미자 국물을 더해 차게 먹는다. 앵두의 붉은빛, 오미자의 산미, 차가운 국물이 어우러져 더위의 첫머리에 알맞은 청량감을 만든다. 푸른 잎의 떡이 양기와 벽사를 품는다면, 앵두화채는 제철 과실로 수릿날의 색과 맛을 전한다.
앵두는 오월에 새로 맛보는 과실이다. 단옷날에는 앵두를 조상에게 올리는 풍속이 있고, 궁중에서도 앵두를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첫 열매를 바치고 나누는 일에는 계절의 결실을 함께 누리는 뜻이 담긴다. 화채는 그 과실을 가장 시원하게 먹는 방식이다. 오미자 국물은 색과 산미를 더하고, 꿀이나 설탕은 단맛을 보태며, 잣은 고소함을 더한다.
단오 절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제호탕은 왕에게 올린 궁중의 여름 음료다. 『동국세시기』에는 단옷날 내의원에서 제호탕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리고, 이를 신하와 기로소에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제호탕은 계절 음료이면서 궁중 의약의 성격을 함께 가진다.
제호탕의 주재료는 오매육이다. 오매는 매실을 말린 이름이지만,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 덜 익은 매실을 볏짚이나 왕겨를 태운 연기 속에서 훈증해 검게 말리고, 씨를 제거해 과육을 쓴다. 이렇게 얻은 것이 오매육이다. 여기에 사인, 초과, 백단향을 더한다. 사인과 초과는 향을 가진 약재이고, 백단향은 향기로운 목재 약재다. 이 재료들을 곱게 가루 내어 꿀에 버무려 끓인 뒤, 항아리에 담아 두었다가 냉수에 타서 마신다.
『동의보감』에는 제호탕이 심한 더위를 풀고, 가슴이 답답하며 목마른 증상을 그치게 한다고 적혀 있다. 단오부터 여름 동안 마시면 더위를 덜 탄다 하였고, 얼음물에 타 마시면 더욱 좋은 음료라는 설명도 있다. 왕에게 올리고 신하들에게 나누어 준 까닭은 음료 문화에만 있지 않다. 더운 계절을 앞두고 궁중의 사람들이 더위를 다스리려는 지혜가 담겨 있다.
수릿날의 음식은 모양도, 먹는 방식도 다르다. 차륜병은 씹어 먹는 떡이고, 앵두화채는 떠먹는 화채이며, 제호탕은 물에 타 마시는 음료다. 그러나 세 음식은 같은 시간 속에 놓인다.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 푸른 잎과 붉은 과실, 향약재와 꿀로 여름의 문턱을 식치로 건너는 일이다.
기후 위기로 더위가 길어지는 요즘, 단오는 오래된 명절이면서도 지금의 계절과 다시 만나는 날이다. 창포 향으로 몸을 맑게 하고, 수리취떡의 무늬에 복과 장수를 새기며, 앵두화채와 제호탕으로 더위를 다스렸던 선조들의 절식은 오늘의 식탁에도 말을 건넨다. 다가오는 여름의 시작, 단오맞이 절식 한 그릇으로 몸을 돌보고 주변의 안녕을 함께 살펴보면 어떨까.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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