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술잔이 오를 때마다 상이 달라졌다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5-14 16:26:27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오늘날 파인다이닝에서는 음식의 흐름에 따라 와인과 사케를 곁들이는 ‘페어링(pairing)’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코스에 맞춰 술의 종류와 잔이 바뀌고, 음식의 향과 질감에 따라 다음 한 잔이 이어지는 방식은 이제 익숙한 다이닝 문화가 됐다. 많은 이들은 이를 현대적이거나 서구적인 식문화로 받아들이지만, 조선 궁중의 연회 기록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나타난다. 술잔이 오를 때마다 새로운 주안상이 함께 오르고, 술의 흐름에 따라 음식 구성 역시 달라졌다는 점이다.
조선은 생각보다 훨씬 술에 깊게 닿아 있는 시대였다. 조선시대 고조리서를 펼치면 음식 조리법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것이 술 빚는 법이다.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 『규합총서』 등에는 다양한 주류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으며, 『주방문』처럼 술 제조 자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문헌도 전해진다. 이는 술이 단순한 기호음료가 아니라 발효와 저장, 계절의 흐름, 접객과 의례를 함께 담아내는 중요한 식문화 영역이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궁중 연회에서는 술이 연회의 중심축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 『국조오례의』와 『진연의궤』 등에 기록된 절차를 보면 초작(初酌)·아작(亞酌)·종작(終酌) 등 술을 올리는 단계가 세분화되어 있으며, 술의 차례에 따라 상차림 역시 계속 변화한다. 이는 단순히 술을 여러 번 따르는 행위가 아니라 술과 음식의 흐름 자체를 하나의 연회 구조로 설계했던 방식에 가깝다.
1847년 창덕궁 인정전에서 열린 조대비 사순 칭경 진하연 기록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확인된다. 기록에는 “술 5작을 올린 뒤 파하였다”는 내용과 함께 술잔이 오를 때마다 새로운 주안상이 함께 오른다는 설명이 등장한다. 하나의 상을 오래 두고 먹는 방식이 아니라 술의 흐름에 따라 상차림 자체를 새롭게 구성했던 것이다.
실제 궁중의 주안상은 술과 함께 비교적 가볍게 시작해 점차 밀도 있는 음식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인다. 초기에는 실과와 각색과, 약과와 다식 같은 병과류와 함께 전유어, 난, 편육 등 손을 가볍게 댈 수 있는 음식들이 오른다. 이후 술이 거듭되면서 어육숙편과 만두류, 탕류 등이 더해지고, 연회의 후반부로 갈수록 신선로와 열구자탕 같은 온식 중심 음식과 육류 비중이 커지는 구조를 보인다.
이는 오늘날 코스요리의 흐름과도 닮아 있다. 차갑고 가벼운 음식으로 시작해 점차 온도감과 풍미를 높여가는 방식, 술의 흐름에 따라 음식의 결을 바꾸는 구성은 현대 다이닝의 시퀀스(sequence)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조선의 궁중 연회는 현대의 페어링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오늘날의 페어링이 특정 음식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술을 맞추는 방식이라면, 조선 궁중의 연회는 술과 의례의 흐름 속에서 음식과 분위기가 함께 움직이는 구조에 가까웠다.
궁중의 연회는 단순히 음식을 올리는 자리가 아니라 술과 음식, 음악과 의례가 함께 흐르는 구조였다. 술이 오르면 음악이 바뀌고, 의식의 단계가 달라지며, 그 흐름에 맞춰 상차림 역시 변화했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연회의 흐름과 격을 완성하는 요소였던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구조가 오늘날의 다이닝 문화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현대의 페어링 테이블은 음식 중심으로 술을 설계하고, 조선의 궁중 연회는 술의 흐름에 맞춰 음식과 의례를 구성했다는 차이가 있지만, 둘 모두 맛과 분위기의 흐름을 단계적으로 설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종종 현대의 페어링 문화를 새로운 외래 식문화처럼 받아들이곤 한다. 그러나 조선의 고조리서와 궁중 연회 기록을 살펴보면, 우리 역시 오래전부터 술과 음식을 하나의 흐름 속에서 구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오늘날 레스토랑의 페어링 테이블은 전혀 새로운 문화가 아니라, 오래전 술잔과 함께 새로운 주안상이 오르던 자리와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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