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테이블]'넘버원' - 무한 할 것만 같은 엄마의 밥상

조소현 기자

cnc02@hnf.or.kr | 2026-07-16 15:38:09

경상도식 소고기무국과 콩잎김치 등 반찬
언젠가는 떠나 보낼 그리움과 사랑의 온기
사진='넘버원' 포스터

[Cook&Chef = 조소현 기자] 엄마 은실(장혜진)이 해준 밥을 먹는 하민(최우식)의 눈앞에 알 수 없는 숫자가 나타난다. 그 숫자는 엄마가 해준 밥을 먹을 때마나 하나씩 줄어든다. 이 숫자가 다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민은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걸 막기 위해 엄마의 밥을 피하기로 한다.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손도 대지 않고 쏟아버리고, 밖에서 사먹자고 조르기도 하지만 엄마랑 살면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피하긴 역부족이다. 하민은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주류회사 영업사원이 된다. ‘엄마 밥 피하기’, 그 다짐을 꽤나 잘 지키며 살아왔다.

어느 날 하민은 여자 친구 려은(공승연)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그녀의 승낙 조건은 단 하나, 하민의 엄마랑 같이 살기다. 외롭게 자라 가족이 그리운 려은의 바람이었다. 그동안 잘 지켜온 ‘규칙’이 위기를 맞은 순간, 하민은 타협할 수 없는 문제를 맞닥뜨린다.


사진='넘버원' 스틸컷

약보다 먼저 생각나는 엄마 밥. ‘경상도식 소고기무국’

사진='넘버원' 스틸컷

영화는 하민의 고향 부산을 사투리와 음식으로 보여준다. ‘압!’ 한마디로 놀라움, 황당함, 억울함 등의 감정들을 표현하고, 사는 게 힘이 들 때면 ‘시어마씨야’하며 이겨낸다.

엄마의 음식에도 그런 힘이 있다. 비실비실 몸살이 올 때, 마음의 상처로 아파할 때도 엄마가 해주는 경상도식 소고기무국을 한그릇 먹어치우면 다시 기운이 난다.

소고기와 무를 무심하게 숭덩숭덩 썰어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에 볶고 팔팔 끓인 얼큰한 소고기무국은 경상도 밥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진='넘버원' 스틸컷

서울·경기권에서 ‘소고기무국’ 하면, 주로 국간장을 베이스로 한 맑고 담백한 국을 떠올리지만, 경상도에서는 고춧가루나 고추기름으로 국물을 빨갛게 해 얼큰하다. 경상도식 소고기무국은 지방이 붙은 소고기를 써서 기름기로 감칠맛을 나게 하고, 무를 삐뚤삐뚤 불규칙하게 썰어 국물이 더 잘 베고 부드럽게 한다.  또 대파를 넉넉히 넣어 시원하고 콩나물로 아삭한 식감을 살려 해장국으로도 제격이다.

유난히 고된 하루를 보낸 하민은 엄마가 해준 소고기무국이 그립다.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검색해가며 좁은 원룸 주방에서 혼자 만들어보지만 엄마가 해 준 그 맛은 흉내조차 못 낸다.

사진='넘버원' 스틸컷

엄마의 사랑을 전해주는 ‘콩잎김치’
하민의 집에서 려은과 은실이 우연히 단 둘이 대면하게 된다. 고아원에서 자라 ‘엄마 밥’을 먹어 본 적 없는 려은은 은실이 해준 음식을 먹고 처음 부모의 정을 느껴본다. 그런 려은에게 은실은 콩잎김치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또 려은은 하민에게 엄마의 콩잎김치를 간접적으로 맛보게한다

콩잎김치. 사진=농촌진흥청

콩잎김치는 경상도에서 많이 먹는 밑반찬 김치로, 단풍이 들 때 따서 씻어낸 콩잎에 멸치액젓, 고춧가루 등을 베이스로 한 양념을 한 잎 한 잎 발라 김치처럼 재운 염장 식품이다. 억센 콩잎이 소금기에 삭아 약간 질긴 조직감과 특유의 향이 별미이다. 이 콩잎김치는 경상도 전체에서 먹지만 먹을거리가 풍부한 해안가보다는 대구·경북 내륙 쪽에서 많이 먹는 향토음식이다. 

특유의 발효된 냄새가 자극적이라 처음 맛보는 타지 사람들은 먹기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경상도 사람들에게 이 콩잎은 다른 반찬 없이도 한 끼 뚝딱하게 해주는 밥도둑이다.

사진='넘버원' 스틸컷

엄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엄마가 차려준 밥을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을 때는 이 밥이 무한히 솟아나는 우물 같이 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집을 떠나 스스로 한끼라도 제대로 차려먹으려는 순간, 따뜻한 밥과 직접 만든 반찬 한 가지에도 얼마나 많은 정성이 담겨있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엄마의 밥은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할 사랑이기도 하다. 그 사랑을 다시는 받을 수 없게 되는 날, 아무렇지 않게 끓여주던 소고기무국 한 그릇 무심히 식탁에 올려주던 평범한 집밥이 가장 생각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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