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맛있는 약속] 바다가 그리울 때, 충무김밥을 만나다

김대식

| 2026-07-10 16:34:34

바다와 사람, 그리고 한 도시에 담긴 입안의 역사
서울 명동의 충무김밥은 ‘국풍81’이후 1983년 개업

충무김밥의 가장 널리 알려진 유래는 새벽마다 바다로 나서는 어부들을 위해 아내들이 밥은 김으로만 말고, 오징어무침과 무김치를 따로 담아낸 소박한 도시락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다.  사진 = 김대식 칼럼니스트

[Cook&Chef = 김대식 칼럼니스트] 여름 휴가철이면 유난히 통영이 떠오른다. 아름다운 한려수도의 풍경도 좋지만, 그곳에는 한때 '충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도시가 있었다. 

통영은 원래부터 충무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해 '통영'으로 불렸고, 1949년 시로 승격되면서 충무공 이순신의 시호를 따 '충무시'라는 이름을 얻었다. 비록 1995년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되면서 다시 통영으로 돌아왔지만, 충무김밥만은 그 시절의 이름을 간직한 채 통영의 바다와 사람들의 삶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통영 바다가 만든 맛의 약속

여름이 오면 누구나 바다를 떠올린다. 강릉이나 속초는 이제 교통이 좋아져 두 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여행지가 됐다. 

하지만 통영은 다르다. 하루를 비우고 마음까지 준비해야 비로소 닿을 수 있다. 그래서 통영은 단순한 바다가 아니라, '떠난다'는 설렘을 품게 하는 여행지다. 

서너 시간을 달려 남해에 닿으면 비로소 '멀리 왔구나' 하는 여행의 기분이 든다. 한려수도의 푸른 바다와 통영 초입 강구항의 풍경, 골목마다 이어지는 오래된 식당들은 그 시간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된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는 통영을 오래도록 대표해 온 음식들도 자연스럽게 여행자를 맞이한다. 그 가운데 소박하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충무김밥이다.

어부들의 한 끼였던 충무김밥은 이들 노포를 중심으로 통영을 찾는 여행객들의 필수 음식이 되었고,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사진 = 김대식 칼럼니스트

충무김밥은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가장 널리 알려진 유래는 새벽마다 바다로 나서는 어부들을 위해 아내들이 밥은 김으로만 말고, 오징어무침과 무김치를 따로 담아낸 소박한 도시락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다.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고,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먹기 편하도록 만든 생활의 지혜였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통영 강구안 포구에서 시작된다. 강구안 항구 좌판에서 팔리던 충무김밥은 뚱보할매김밥과 원조삼대할매김밥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통영의 대표 음식으로 성장했다.

어부들의 한 끼였던 충무김밥은 이들 노포를 중심으로 통영을 찾는 여행객들의 필수 음식이 되었고,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981년, 충무김밥 바다를 건너다

1981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국풍81'은 충무김밥의 운명을 바꾼 무대였다. 통영의 향토음식으로만 알려졌던 충무김밥은 이 행사에 참가하며 처음으로 전국의 사람들과 만났다. 강구안의 소박한 한끼가 서울 시민들의 입맛을 사로 잡았고, '충무김밥'이라는 이름도 비로소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1983년 명동충무김밥이 문을 열면서, 통영의 맛은 서울 한복판에서도 이어지게 된다.

1990년대 초, 직장생활을 시작한 곳이 명동이었다. 명동성당을 찾을 때면 자연스럽게 들르던 곳이 명동충무김밥이었다. 대한음악사 골목을 돌아 명동역 방향으로 향하면 작은 가게 앞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퇴근길 종이봉투에 담아 들고 가던 충무김밥은 어느새 가족의 단골 저녁이 되었고, 지금도 그 맛은 가족 모두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어릴 적부터 그 맛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성인이 된 지금도 명동에 가면 가장 먼저 충무김밥을 찾는다. 입맛은 변해도 어린 시절의 맛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는 모양이다.

통영 강구안에서 만난 충무김밥의 고향

1990년대 초, 직장생활을 시작한 곳이 명동이었다. 명동성당을 찾을 때면 자연스럽게 들르던 곳이 명동충무김밥이었다. 사진 = 김대식 칼럼니스트

그래서인지 통영에 가면 강구안부터 걷는다. 오래된 간판과 골목을 따라 원조 충무김밥집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음식에도 고향이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제는 통영 여행을 가면 하루에 한 끼 이상은 꼭 충무김밥을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여행의 루틴이 되었다. 강구안 일대에서 가장 많은 발길이 모이는 곳은 역시 통영뚱보 할매김밥과 원조3대 할매김밥이다. 

두 집은 바로 이웃해 있으면서도 각자의 개성과 오랜 단골을 가진 통영 충무김밥의 양대 산맥이다. 

먼저 통영뚱보할매김밥은 언제 가도 손님들로 북적인다. 자극적인 맛보다는 담백함이 매력이다. 오징어무침은 너무 맵지 않게 간을 맞추고 어묵을 적절히 넣어 감칠맛을 더했다. 석박지도 슴슴하면서 시원한 맛을 유지한다. 무엇보다 이 집은 밥의 온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인근 작업장에서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보온 스티로폼 용기에 담고 이불까지 덮어 수시로 매장으로 옮긴다. 그래서 김에 싼 밥만 먹어도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들 만큼 밥맛 자체가 뛰어나다.

바로 옆 원조삼대할매김밥은 또 다른 개성을 보여준다. 전국 택배도 가능한데 5인분 이상이면 주문할 수 있다. 서울에서 먹는 충무김밥 가격과 비교하면 부담이 크지 않아 집에서도 통영의 맛을 즐기려는 이들이 꾸준히 찾는다. 맛은 명동충무김밥처럼 조금 더 매콤한 편이며, 고성에서 가족이 직접 재배한 고춧가루를 사용해 칼칼하면서도 깔끔한 풍미를 낸다.

맛의 약속, 충무김밥을 찾아서

두 집 가운데 어느 곳이 '진짜 원조'인지를 따지는 일은 이제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강구안 포구의 작은 좌판에서 시작된 충무김밥은 두 노포를 중심으로 통영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성장했다. 지금도 강구안 골목 10여 곳의 충무김밥집이 저마다의 손맛으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여행은 끝나도 맛은 오래 남는다. 올 여름 통영을 찾게 된다면 푸른 바다와 강구안 포구를 천천히 걸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충무김밥 한 줄을 앞에 두고, 어부들의 소박한 도시락에서 시작된 이야기와 명동까지 이어진 시간을 함께 떠올려보자. 

한 줄의 김밥에는 바다와 사람, 그리고 한 도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올여름, 바다가 그리워질 때 다시 통영을 찾는 이유. 그 약속의 이름은 어쩌면 충무김밥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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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골목 맛집 탐험가) = 리테일 소매기업 30년 경력으로 3000여 개 점포 개발을 이끈 현장형 미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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