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탐구] 올 초복엔 '금중탕'으로 더위를 쫒아볼까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 2026-07-14 16:50:06
닭과 쇠고기, 전복·해삼·버섯 등을 한 그릇에 요리
[Cook&Chef = 서진영 기자] 2026년 7월 15일은 초복이다. 푹 고아낸 삼계탕을 비롯해 식초와 겨자로 산뜻한 맛을 낸 초계탕, 회와 전, 맑은탕으로 즐기는 민어가 생각나는 시기다. 올해 중복은 7월 25일, 말복은 8월 14일이다.
삼계탕과 초계탕, 민어가 오늘날의 복날 음식이라면 옛 조리서와 왕실 연향 기록에는 또 다른 닭 요리가 남아 있다. 닭에 달걀과 버섯, 채소를 채워 항아리에서 중탕하거나, 쇠고기와 전복·해삼을 더해 풍성하게 차린 금중탕(錦中湯)이다.
금중탕이 복날의 음식은 아니지만 이번 초복에 금중탕을 꺼내는 이유는 삼계탕과 다른 방식으로 닭을 조리해 온 보양 음식 문화를 살피기 위해서다. 한 마리의 닭을 항아리에 넣어 오랫동안 익힌 조리법부터 왕실 연향에 오른 대규모 탕까지, 같은 이름 아래 서로 다른 금중탕이 전한다.
18세기 『잡지』에 기록된 금중탕
금중탕은 18세기 고조리서 『잡지』에 기록돼 있다. 음식과 술, 장류, 식품 저장법 등을 기록한 조리 문헌으로, 금중탕을 비롯해 두부선과 호두자반, 가지찜 등의 조리법을 수록했다. 금중탕은 닭을 토막 내어 끓이는 국이나 탕과 형태부터 다르다. 닭을 깨끗이 손질한 뒤 뱃속에 달걀 두 개를 깨뜨려 넣는다. 생강과 파, 마늘, 석이, 송이, 박고지를 준비하고, 미나리는 살짝 데쳐 1치 길이(약 3㎝)로 자른다. 이 재료에 간장과 기름을 각각 한 종지씩 넣어 한데 버무린다.
양념한 재료 가운데 일부는 닭의 뱃속에 채우고 벌어진 부분을 실로 꿰맨다. 남은 재료와 닭은 항아리에 함께 담는다. 항아리 입구를 단단히 막아 물을 담은 솥에 넣고 중탕으로 오래 익힌다. 충분히 끓이면 닭이 무르게 익어 맛이 좋다고 기록했다.
달걀은 닭 속에서 익으며 양념한 채소와 버섯을 묶어준다. 생강과 파, 마늘은 닭의 냄새를 줄이고 향을 더한다. 석이와 송이는 향을 보태고, 박고지와 미나리는 서로 다른 씹는 맛을 더한다.
금중탕은 이름에 ‘탕’이 들어가지만 『잡지』의 조리법만 놓고 보면 국물이 많은 닭국보다는 속을 채운 닭찜이나 중탕 음식에 가깝다. 오늘날의 음식 이름만으로 옛 조리 형태를 판단하기 어렵기도 하다.
의궤에 오른 금중탕, 닭에 육지와 바다를 더하다
금중탕은 조리서에만 남은 음식이 아니다. 조선 후기 왕실 연향에서도 여러 차례 찬품으로 올랐다. 1719년 숙종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한 연회 기록에는 ‘禁中湯’으로 적혔고, 이후 의궤에서는 비단 금 자를 쓴 ‘錦中湯’이라는 표기가 확인된다. 왕실 연향의 시기에 따라 닭과 표고, 박고지, 해삼, 무, 잣 등 재료 구성이 달라졌다.
1848년 『무신진찬의궤』에 기록된 금중탕은 규모가 한층 크다. 창경궁 통명전에서 열린 진찬의 대왕대비전 상차림에는 진계 10마리, 소 안심 반 부, 전복과 해삼 각 7개, 무와 오이 각 10개, 달걀 15개, 표고와 석이, 참기름과 간장, 후춧가루, 잣을 사용한 금중탕이 올랐다. 여기서 진계(陳鷄)는 충분히 자란 묵은 닭을 뜻한다.
왕실의 금중탕은 닭만으로 국물을 내지 않았다. 소 안심으로 육향을 보태고 전복과 해삼을 넣어 바다의 맛과 식감을 더했다. 표고와 석이는 향을 보탰으며 무와 오이는 고기와 해산물의 맛을 흡수했다. 달걀과 잣까지 사용해 다양한 재료와 여러 손질 과정을 거쳐 왕실의 연향 음식으로 완성됐다.
당시 소는 농사와 운송에 필요한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전복과 해삼도 채취와 건조, 운반, 손질에 많은 수고가 필요한 식재료였다. 묵은 닭과 쇠고기, 해산물, 버섯을 한데 사용한 금중탕은 왕실 연향의 규모와 식재료 운용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음식이다. 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