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장의 원형은 콩뿐이었을까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3-09 16:45:51

어육장과 젓갈 사이, 장의 역사적 범주를 다시 묻다 [사진=윤왕순명인장 홈페이지]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오늘날 한국에서 “장(醬)”이라고 하면 대부분 된장, 간장, 고추장과 같은 콩 기반 발효 식품을 떠올린다. 장독대와 메주, 장 담그기와 장 가르기 같은 전통 문화 역시 콩 발효를 중심으로 설명된다. 실제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는 국가무형유산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메주를 이용해 간장과 된장을 만드는 발효 체계는 한국 음식 문화의 핵심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장의 역사를 문헌을 통해 살펴보면, 장이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콩 발효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아시아 식문화에서 장은 특정 재료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 소금과 발효를 통해 만들어진 짠 조미 식품을 넓게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장(醬)의 본래 의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장(醬)」 항목에 따르면 장은 콩이나 곡물, 육류, 어류 등을 소금과 함께 발효시켜 만든 저장성 조미 식품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는 장이 단일 식품이 아니라 다양한 발효 조미료를 아우르는 개념이었음을 의미한다.

동아시아 고문헌에서도 이러한 의미가 확인된다. 중국의 고대 제도서인 주례에는 장을 관리하는 관직인 장인이 등장하며, 장의 종류 역시 여러 유형으로 구분되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콩으로 만든 두장뿐 아니라 고기나 생선을 발효한 해(醢)도 포함된다. 해는 육류나 어류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식품으로, 장의 한 종류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기록은 장이라는 개념이 처음부터 콩 발효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육류와 어류 발효까지 포함하는 넓은 발효 식품 범주였음을 보여준다.

한국 문헌에 등장하는 다양한 장

한국의 가장 이른 기록에서도 장은 단일 식품이 아니다. 삼국사기 신문왕 3년 기록에는 왕이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면서 보낸 예물 목록에 미, 주, 유, 밀, 장, 시, 포 등이 등장한다. 여기서 장과 시가 구분되어 기록된다는 점은 이미 당시 장이 독립된 발효 식품 범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문헌으로 오면 장의 종류는 더욱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가 어육장이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어육장은 육류와 생선을 함께 발효시켜 만드는 장류의 일종으로, 독에 재료를 켜켜이 넣고 메주와 소금물을 더해 밀봉한 뒤 장기간 숙성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완성까지는 보통 1년 이상이 걸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도 어육장을 중요한 발효 식품으로 소개한다. 물고기와 육류, 어란 등을 넣고 메줏가루와 소금물을 섞어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설명되며, 이는 젓갈과 장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발효 식품이었다.

조선 후기 생활서인 규합총서와 증보산림경제에서도 어육장 제조법이 등장한다. 이 문헌들에는 어육장의 재료로 새우나 꿩고기가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여러 재료를 혼합해 장기간 발효시키는 방식이 소개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은 조선시대 장의 범주가 오늘날보다 훨씬 넓었음을 보여준다.

콩 장이 중심이 된 이유

그렇다면 왜 오늘날 한국에서는 콩으로 만든 장만이 대표적인 장으로 인식되게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식생활 구조 속에서 메주 기반 장 체계가 중심 조미료 체계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장 담그기」와 「간장」 항목에 따르면 조선시대 가정에서는 매년 메주를 만들어 장을 담그는 것이 중요한 연중 행사였다.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간장과 된장을 분리하는 방식은 가정식 조리의 기본 조미 체계를 형성했다.

왕실에서도 장은 중요한 식품이었다. 조선 궁중에는 장을 저장하는 장고가 따로 존재했으며, 장은 궁중 음식에서도 핵심 조미료로 사용되었다.

또한 콩은 농경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작물이었다. 저장성이 높고 단백질 공급원으로도 중요했다. 반면 어류나 육류를 이용한 발효 식품은 지역적 편차가 크고 저장과 위생 관리가 상대적으로 어려웠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콩 장은 전국적인 기본 조미료로 자리 잡았고, 어육장과 같은 발효 식품은 점차 지역 음식이나 젓갈 문화로 분화되었다.

[사진=윤왕순명인장]

젓갈과 장의 경계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젓갈과 장의 경계 문제다.

오늘날 어류나 육류를 소금에 발효시킨 식품은 대부분 젓갈로 분류된다. 멸치젓, 새우젓, 갈치젓 등은 젓갈 문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식된다. 그러나 문헌을 살펴보면 일부 발효 식품은 장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육장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어육장은 젓갈과 유사한 발효 식품으로 보일 수 있지만,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분명히 장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과거의 식품 분류 체계가 오늘날과 완전히 동일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동아시아 식문화 전체를 살펴보면 이러한 경계는 더욱 흥미로워진다. 동남아시아의 어장 문화, 예를 들어 베트남의 느억맘이나 태국의 남플라는 생선을 발효해 만든 조미료로 한국의 액젓과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이 역시 넓은 의미의 발효 조미료 문화로 보면 장과 같은 범주에 놓일 수 있다.

결국 장과 젓갈의 구분은 절대적인 기준이라기보다 역사적 식문화와 현대 식품 분류 체계가 교차하면서 형성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장의 역사적 범주를 다시 바라볼 필요

오늘날 한국 음식 문화에서 된장과 간장은 가장 중요한 발효 조미료다. 메주를 기반으로 한 장 담그기 문화 역시 한국 식생활을 대표하는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문헌 기록을 통해 확인되는 사실은 장의 세계가 한때 훨씬 넓었다는 점이다. 어육장과 같은 복합 발효 식품 역시 장이라는 이름 아래 존재했고, 이는 한국 발효 문화의 또 다른 계보를 보여준다.

따라서 장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단순히 된장의 기원을 설명하는 문제가 아니다. 장이라는 단어가 원래 어떤 범위를 가졌는지, 그리고 그 범주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장을 말할 때 대부분 콩 발효를 떠올린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은 장의 세계가 더 넓은 발효 문화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된장과 간장이 그 중심에 자리 잡게 된 것은 한국 식문화의 발전 과정 속에서 형성된 결과이며, 동시에 과거 장 문화의 다양한 계보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단서이기도 하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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