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수행의 밥상에서 세계의 식탁으로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3-17 16:27:44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채식과 발효, 절제의 철학. 오늘날 세계 미식계가 주목하는 이 키워드는 오래전부터 한국 사찰의 식탁 위에 존재해 왔다. 수행자의 식사로 이어져 온 사찰음식은 최근 몇 년 사이 자연 식재료와 지속가능한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미식 담론 속에서 다시 언급되고 있다.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에서 수행하는 정관스님의 활동은 이러한 흐름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Chef’s Table을 통해 소개된 이후 사찰음식은 해외 셰프와 미식가들 사이에서도 자연과 발효, 절제된 조리 철학을 담은 음식 문화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사찰음식은 단순히 최근의 미식 트렌드로 등장한 음식은 아니다. 사찰음식은 오랜 시간 불교 수행 공동체 안에서 이어져 온 음식 문화이며, 그 안에는 음식을 대하는 태도와 삶을 바라보는 철학이 함께 담겨 있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를 중요하게 여기는 음식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수행자가 몸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받아들이는 과정이며,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모든 과정이 수행의 일부로 여겨진다. 사찰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단순한 조리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의 연장선에 가깝다. 재료를 다듬고 불을 다루며 발효의 시간을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수행자는 자연의 흐름을 배우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본다.
사찰음식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육류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육식을 금하는 이유는 단순한 음식 규율 때문만은 아니다. 불교의 기본 계율 가운데 하나가 살생을 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초기 불교에는 ‘삼정육’이라는 개념이 있어 자신을 위해 동물이 죽는 장면을 보지 않았고, 그 사실을 듣지 않았으며, 자신을 위해 죽였다는 의심이 없는 경우라면 먹을 수 있다는 기준이 존재했다. 하지만 동아시아 대승불교 전통에서는 점차 생명을 해치지 않는 식생활을 강조하면서 채식 중심의 음식 문화가 형성되었다. 한국 사찰음식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발전해 왔다.
사찰음식에서 또 하나 특징적인 규율은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신채는 마늘, 파, 달래, 부추, 흥거처럼 향이 강한 채소를 말한다. 불교 경전에서는 이러한 식재료가 욕망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을 자극해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사찰에서는 강한 향신 채소 대신 제철 채소와 산나물, 곡물, 발효 식재료 등을 중심으로 음식을 만든다. 자극적인 맛을 줄이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조리 방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이다.
한국에서 사찰음식은 불교가 전래된 이후 사찰 공동체 안에서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가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찰이 문화와 교육의 중심 역할을 했다. 이 시기 사찰에서는 곡물과 채소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조리법이 발전했고 두부와 장류 같은 발효 음식도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유교가 국가 이념이 되었지만 사찰은 여전히 발효 음식과 채식 조리법을 이어가는 공간이었다. 사찰음식은 궁중음식이나 반가 음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국 음식 문화의 또 하나의 축을 형성해 왔다.
사찰마다 음식 문화가 조금씩 다른 것도 특징이다. 사찰의 위치와 수행 방식, 주변 자연환경에 따라 사용하는 식재료와 조리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산속 사찰에서는 산나물과 버섯이 중요한 식재료가 되고 바닷가에 가까운 사찰에서는 해조류가 음식에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또 어떤 사찰은 선 수행 중심의 수행 도량이고 어떤 사찰은 기도 수행이나 교육 활동이 중심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사찰음식의 모습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된다.
사찰음식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 가운데 하나는 수행자들의 활동이다.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에서 수행하는 정관스님은 사찰음식을 세계에 알린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와 장류 발효를 중심으로 한 사찰음식을 선보이며 음식이 수행의 한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해 왔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Chef’s Table’을 통해 소개되면서 사찰음식은 세계 미식계에서도 관심을 받게 되었다.
사찰음식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또 다른 인물로는 선재스님이 있다. 선재스님은 사찰음식을 단순한 채식 요리가 아니라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는 음식 철학으로 설명하며 다양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이어 왔다. 이러한 활동은 사찰음식을 수행자의 식사에서 대중 문화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사찰음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크게 늘었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찰음식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사찰음식 강좌나 문화 프로그램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과거에는 수행자들의 일상 식사로만 여겨졌던 사찰음식이 이제는 하나의 식문화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사찰음식은 화려한 조리 기술이나 강한 자극을 앞세운 음식이 아니다. 대신 자연의 흐름을 따르고 재료의 본래 맛을 존중하며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사찰음식은 때로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오랜 수행과 철학이 담겨 있다.
수행자의 밥상에서 시작된 사찰음식은 이제 문화와 미식의 영역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얻고 있다. 음식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며 음식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음식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
사찰의 식탁은 지금도 조용히 그 가치를 전하고 있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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