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의 퇴장, 염소 산업화로 잇는 정부의 정책 설계

오요리 기자

cnc02@hnf.or.kr | 2026-03-02 23:42:40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오요리 기자] 여름철 보양식 시장 지도가 재편되고 있다. 복날의 상징이던 ‘보신탕’이 빠르게 사라지고, 그 자리를 ‘염소탕’과 ‘흑염소 전골’이 대체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메뉴 변화를 넘어 한국 사회의 가치관과 식문화의 전환을 시사하는 지표다.

이러한 소비 시장의 흐름에 정부가 정책으로 응답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가 지난 2월 23일 발표한 ‘염소산업 발전대책’은 이 변화를 산업적 틀로 흡수하려는 첫 공식 시도다.

지금까지 ‘틈새 축종’에 머물던 염소를 소, 돼지, 닭과 같은 주력 축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이 대책은 소비 수요 변화를 포착하고, 취약한 생산 기반을 보강하며, 불투명한 유통 구조를 혁신하는 다층적 목표를 담고 있다.

현재 염소고기 소비 증가는 두 가지 축이 맞물려 발생한 현상이다. 하나는 반려동물 인구 증가와 동물복지 인식 개선이 이끈 ‘개 식용 종식’이라는 사회적 합의다. 다른 하나는 이로 인해 생긴 보양식 시장의 공백을 파고든 염소고기 수요와 그 이면의 불안정한 산업 구조다. 정부의 정책 개입은 이 두 축을 연결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보양식 지도의 균열, 사라지는 보신탕

변화는 2024년 ‘개 식용 종식 특별법’ 제정으로 가속화됐다. 3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7년 2월부터 식용 목적의 개 사육, 도살, 유통, 판매가 전면 금지된다. 법제화 이전부터 시장은 이미 급격히 위축됐다. 농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준, 전국 1537곳의 개 사육 농장 중 78%인 1204곳이 폐업 절차에 들어갔다.

경기도에서 수십 년간 보신탕 전문점을 운영하던 한 업주는 약 4년 전 한식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젊은 세대의 소비 감소가 주된 원인이었다. 의정부, 연천 등 과거 보신탕으로 유명했던 식당가 역시 대부분 폐업하거나 추어탕, 염소탕 전문점으로 간판을 교체했다. 이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전국적 현상이다.

근본 원인은 반려견 인구 1500만 시대라는 사회 구조적 변화와 동물권 인식 제고에 있다. 과거 ‘가축’으로 취급되던 개가 ‘반려동물’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얻으면서 개 식용은 윤리적 논쟁의 대상이 됐다. 보신탕의 퇴장은 식문화의 자연 도태라기보다, 사회적 가치관 변화가 시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결과다.

그러나 보신탕 소비 감소가 보양식 문화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력을 보충하려는 한국 고유의 식문화 수요는 견고하다. 실제로 보신탕의 공백은 염소탕이 빠르게 대체했다. 주변에서도 보양식으로 염소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수육과 전골, 탕 등 기존 보신탕과 유사한 조리 방식과 상차림이 소비자의 심리적 전환 비용을 낮춘 요인으로 분석된다.

수요 폭증의 그늘, 불안정한 산업 기반

보신탕의 빈자리를 차지한 염소고기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24년 추정 소비량은 1만 3708톤으로, 전년(1만 986톤) 대비 25% 급증했다. 판매처 비중은 식당이 55.3%로 절반 이상을 차지해 외식 메뉴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식육점(20.5%), 건강원(16.7%)이 그 뒤를 이었다.

문제는 폭증하는 수요를 국내 생산 기반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늘어난 수요는 대부분 수입산이 채웠다. 2024년 전체 소비량 중 호주산 수입량은 8126톤으로 시장 점유율 59.3%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 염소고기 자급률이 2023년 45.4%에서 2024년 40.6%로 1년 만에 4.8%p 하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저렴한 수입산의 공세는 국내 사육 농가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시장 수요가 늘어남에도 산지 가격은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체계적인 유통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다. 대부분의 거래가 중간 유통상인과 농장주 간의 ‘문전 거래’ 방식으로 이뤄져 농가는 제값을 받기 어려운 구조였다. 명확한 등급 판정 기준이나 경매 시스템 부재는 시장의 불투명성을 키웠다.

정부의 개입, 산업화 로드맵 본격 가동

농식품부의 ‘염소산업 발전대책’은 이러한 산업 위기에 대한 정부의 공식 응답이다. 정부는 2025년 2월부터 연구기관, 생산자,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11차례 운영하며 현장 의견을 수렴했다. 대책의 핵심은 생산, 유통, 질병 관리 전반에 걸쳐 제도적 기반과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2029년까지 산업화 기초를 다진다는 명확한 목표 시점도 설정했다.

대책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생산기반 구축이다. 육량형 신품종 개발 계획이 주목된다. 기존 품종은 출하까지 13~15개월이 걸려 50kg에 도달하는 반면, 신품종은 12개월 만에 55kg까지 성장시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이는 사육 기간 단축과 생산비 절감으로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할 수 있다. 동시에 재래 흑염소는 토종가축으로 인정해 유전자원을 보존한다.

축사 표준 설계도를 개발·보급하고 맞춤형 사양관리 기술을 지원해 영세한 사육 환경을 개선한다. 또한 미등록 사육 농가에 계도기간을 부여하고 등록을 유도해 산업을 제도권 안으로 완전히 편입시킬 계획이다.

유통 구조 개편과 ‘이력제’ 도입

둘째, 유통기반 구축은 이번 대책의 핵심이다. 소비자의 신뢰를 저해하는 수입산의 원산지 둔갑을 막기 위한 고강도 대책이 포함됐다. 온라인 모니터링과 현장 단속을 강화하고, 육안 구분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과학적 원산지 판별법 개발을 추진한다.

가장 중요한 조치는 ‘염소 이력제’ 도입이다. 소와 돼지처럼 사육부터 도축, 가공, 판매까지 전 과정의 정보를 기록·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이력제는 원산지 허위 표시를 원천 차단하고, 위생 문제 발생 시 신속한 역추적을 가능하게 해 소비자 신뢰를 확보하는 핵심 장치다. 농식품부는 이력제 도입 타당성 연구에 즉시 착수한다.

위생 문제 해결을 위해 권역별 염소 전용 도축장 설립을 지원하고, 표준화된 도축·가공 공정 매뉴얼을 개발·보급한다. 이는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불법 도축을 근절하고 위생적인 염소고기를 공급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불투명한 문전 거래를 개선하기 위해 가축시장 경매를 확대하고, 가격 정보를 온라인으로 실시간 제공해 투명한 거래 환경을 조성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질병 관리와 지속 가능한 미래

셋째, 질병 관리 체계 강화다. 어린 염소(자축)의 높은 폐사율은 사육 농가의 주요 문제점 중 하나다. 이를 줄이기 위해 기생충 감염 질병인 ‘크립토스포리디움증’과 세균 감염 질병인 ‘건락성림프절염’ 예방 백신을 개발해 보급할 예정이다.

염소에 사용 가능한 동물용 의약품 부족 문제도 개선한다. ‘동물용의약품 심사규정’을 개정해 염소용 의약품의 품목 허가 절차를 간소화한다. 이는 질병 발생 시 농가의 신속한 대응을 가능하게 해 생산 안정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농식품부는 분기별 협의체를 통해 대책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현장 의견을 반영할 방침이다. 이재식 농식품부 축산정책관은 “염소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해 농가 생산성 향상과 소득 안정을 도모하고, 국민에게는 안전하고 품질 좋은 염소고기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정책이 현장과 긴밀히 소통하며 추진될 것임을 시사한다.

식문화 변화와 산업 정책의 만남, 그 전망은

보신탕 간판이 내려지고 염소탕 간판이 걸리는 현상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정부의 염소산업 발전대책은 이러한 식문화의 지각변동을 새로운 산업 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적 판단의 결과물이다. 이는 외식업계에도 중요한 신호를 보낸다. 그간 염소고기는 불안정한 공급과 불균일한 품질로 메뉴 확대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 대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면 외식업체들은 안정적으로 고품질의 국산 염소고기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

물론 과제는 남아있다. 정책의 골격은 마련됐지만 실행력이 관건이다. 권역별 도축장 설립, 이력제 시스템 구축 등은 막대한 예산과 부처 간 협력이 필요한 장기 과제다. 또한, 생산성 향상을 통해 국산 염소고기가 수입산과의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한다.

궁극적으로 국산 염소고기는 ‘보신탕 대체재’를 넘어, 그 자체의 맛과 영양적 가치를 인정받는 독립 식재료로 자리 잡아야 한다. 정부의 체계적 지원과 산업 기반 구축은 그 첫걸음이다. 사회적 변화가 만든 시장의 기회를 성공적인 산업 정책으로 연결해, 염소가 K-보양식의 대표 품목이자 축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Cook&Chef / 오요리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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