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흑백요리사2] 백종원, 당신의 '신기하다'는 심사였는가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5-12-20 21:00:02
[Cook&Chef = 이경엽 기자] 나는 흑백요리사2 1~3화를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백종원이라는 심사위원은 과연 '조리'를 보고 있었는가.
한때 그는 '국민 요리 선생님'이었다. 집밥 백선생, 백종원의 골목식당, 백종원의 쿠킹로그. 그의 콘텐츠는 수천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그의 레시피는 전국 가정의 식탁을 바꿨다. "백종원이 알려준 대로 하면 맛있다"는 공식이 성립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그를 향한 시선은 예전 같지 않다. 프랜차이즈 관련 논란이 이어지면서 대중의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흑백요리사2가 공개됐다. 나는 기대했다. 어쩌면 백종원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요리에 대한 진심'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심사위원으로서 조리사들의 기술과 철학을 읽어내고, 그것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 그것이야말로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그러나 1~3화를 보고 나서, 나는 아쉬웠다. 백종원의 심사 언어에서 '조리사를 향한 진지함'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신기하다'는 말로 무엇을 평가했나
백종원의 심사 장면을 다시 돌려봤다. 그가 가장 자주 쓰는 표현들을 정리해 봤다.
"신기하다.", "처음 먹어본다.", "맛있다.", "대단하다.", "정성이 느껴진다."
이 표현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전부 소비자의 언어라는 것이다. 맛집 유튜브에 달리는 댓글과 다를 바 없다. "와 맛있겠다", "신기하네", "대박". 이런 반응은 요리를 처음 접하는 일반인도 할 수 있다.
심사위원의 언어는 달라야 한다. 조리사를 평가하는 사람은 '왜' 맛있는지, '어떤 기술'이 쓰였는지, '무엇을 의도'했는지를 읽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안성재 셰프는 그것을 했다.
김도윤 셰프의 면을 평가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면의 익힘이 적절하지 않다. 이 텁텁함은 의도가 아니라 덜 익어서 나는 것이다." 이것은 기술적 분석이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평가다.
윤주모의 수육을 심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성재는 "고기냐 국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건 특별한 손맛이다. 반찬 하나를 먹어도 안주가 되는 맛"이라고 평했다. '손맛'이라는 표현에는 조리사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소줏고리라는 화려한 퍼포먼스가 있었지만, 안성재는 그 뒤에 숨겨진 조리 기술과 철학을 정확히 읽어냈다.
백종원은 '인상'을 말했다. 새롭다, 신기하다, 맛있다.
안성재는 '기술'을 말했다. 익힘, 식감, 의도, 균형.
이 차이가 심사 언어의 격차다.
떡갈비의 '의도'는 묻지 않고 "쌩뚱맞다"
'4평 외톨이' 참가자의 심사 장면을 복기해 보자. 그는 4평 남짓한 공간에서 혼자 묵묵히 요리해 온 셰프다. 그가 내놓은 떡갈비 위에는 트러플이 올라가 있었다.
심사위원이라면 응당 "왜 트러플을 올렸나요?", "훈연 향과 트러플의 조화를 의도했나요?"라고 물었어야 했다. 하지만 백종원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떡갈비에 왜 쌩뚱맞게 트러플을 올려놨대?"였다. 셰프의 창의적 시도에 대해 의도를 묻기보다 날선 표현이 먼저 나온 것이다.
그의 합격 기준도 단순하게 느껴졌다. 고등어 비빔밥을 먹고 "비린내 안 나요. 가시도 없고. 너무 좋아요"가 끝이었다. 비린내 잡고 가시 제거하는 건 기본기에 해당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요리 서바이벌에서 심사위원이 할 평가로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물로 술이 넘어가네?" — 심사인가, 시식인가
'아기 맹수' 참가자의 심사도 아쉬웠다. 그녀는 '박주산채'라는 주제로, 고기 없이 나물만으로 구성된 주안상을 차려냈다. 냉이를 볶아 오징어 풍미를 내고, 방풍나물과 꽃게 알을 무쳐내는 등 식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긴 요리였다.
참가자가 "냉이를 볶았을 때 오징어 풍미가 나서..."라며 자신의 조리 철학을 설명할 때, 백종원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술을 들이켜더니 딱 한마디를 남겼다.
"어, 나물로도 술을 먹을 수 있네. 생존입니다."
셰프가 나물을 어떻게 손질했는지, 맛의 밸런스는 어떤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술안주로서의 가치'가 합격의 주된 기준처럼 보였다. 나물 요리의 가능성을 증명하려던 셰프 입장에서는 아쉬운 평가였을 것이다.
'서울 엄마'의 너비아니를 평가할 때도 비슷했다. "서울 양반집 음식 같다"는 한마디가 끝이었다. 물론 좋은 표현이다. 하지만 '왜' 양반집 음식 같은지, 어떤 기술이 그런 맛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분석은 들을 수 없었다.
당신의 철학은 무엇인가
심사위원으로서 백종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요리 철학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순하지만 중요하다. 조리사를 평가하려면, 평가자 자신에게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기준은 철학에서 나온다. "나는 요리에서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명확한 관점.
안성재 셰프에게는 그것이 있다. '정확한 조리'. 그의 레스토랑 모수(Mosu)의 요리는 모든 요소가 정밀하게 계산되어 있다. 온도, 시간, 비율. 그가 추구하는 것은 감이 아니라 정확성이다. 이 철학은 그의 심사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백종원에게는 그것이 있는가.
그의 콘텐츠를 보면, "쉽고 맛있게"가 키워드인 것 같다. 복잡한 기술 없이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 대중에게는 분명 가치 있는 메시지다.
하지만 흑백요리사의 심사석에서 그 철학이 적용될 수 있을까. 80명의 전문 조리사가 인생을 건 요리를 들고 나왔다. 그들은 "쉽고 맛있게"를 위해 그 자리에 온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기술과 철학을 인정받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런 조리사들을 "신기하다", "맛있다"로 평가하는 것이 충분한가.
제이미 올리버를 보라. 그의 철학은 "음식은 교육"이다. 영국 학교 급식을 바꾸고, 음식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려 했다. 그가 심사를 한다면, 그 요리가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를 볼 것이다.
페란 아드리아를 보라. 그의 철학은 "요리는 예술이자 과학"이다. 분자 요리의 선구자로서 음식의 형태와 질감을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그가 심사를 한다면, 그 요리에 "어떤 창의적 시도가 있는가"를 볼 것이다.
마시모 보투라를 보라. 그의 철학은 "음식은 기억"이다. 할머니의 요리, 어린 시절의 맛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그가 심사를 한다면, 그 요리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가"를 볼 것이다.
백종원의 철학은 무엇인가. "쉽고 맛있게"? 그것으로 미쉐린 셰프를 평가하고, 57년 경력의 중식 대가를 심사하고, 사찰음식 명장의 요리를 판단하기에 충분한가? 명확한 철학이 보이지 않으면, 심사의 설득력도 약해진다. "신기하다"는 말이 가벼워 보이는 이유다.
두 심사위원의 차이
흑백요리사2를 보면서 가장 선명하게 느낀 것은 두 심사위원의 심사 언어 차이다. 안성재 셰프는 시즌1 때보다 더 많은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인기를 얻으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능적 캐릭터가 없다. 과장된 리액션 없다. 화려한 언변 없다. 그저 묵묵히 요리를 맛보고, 기술적으로 분석하고, 솔직하게 평가할 뿐이다.
그런데 대중은 그를 사랑한다. 왜일까. 사람들은 '진짜'를 알아보기 때문이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을 지키는 사람, 권위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요리만 보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반면 백종원의 심사는 어떻게 비치는가. 방송 편집을 보면, 합격 선언은 주로 백종원이, 탈락 선언은 주로 안성재가 맡는 구조로 보인다. 이것이 본인의 의도인지 편집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왜 백종원은 맨날 좋은 말만 하지?", "탈락은 다 안성재가 시키네".
결과적으로 '따뜻한 심사위원'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곧 '좋은 심사위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심사위원의 역할은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조리사의 기술과 철학을 정확히 읽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존경은 어디서 오는가
잠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조리사는 어떻게 해야 존경받을 수 있을까. '인기'와 '존경'은 다르다.
인기는 재미있으면 얻을 수 있다. 웃기거나, 신기하거나, 자극적이면 인기를 얻는다. 인기는 빠르게 오지만, 빠르게 사라지기도 한다.
존경은 다르다. 존경은 철학이 있어야 얻을 수 있다.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고, 그 메시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때 존경이 생긴다. 존경은 천천히 쌓이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안성재는 존경받고 있다. 그 존경은 '정확한 조리'라는 명확한 철학에서 나온다. 그의 레스토랑 ‘모수’는 한때 국내 유일의 미쉐린 3스타였다. 세계적인 평가 기관이 그의 요리를 인정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중도 그의 '진지함'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백종원은 인기가 있었다. 한때는. 그러나 그 인기는 '요리를 재미있게 알려주는 사람'으로서의 인기였다. '요리에 철학이 있는 사람'으로서의 존경과는 다른 결이다. 이 차이가 어디서 왔을까. 결국 철학의 유무다.
백종원에게 묻는다
글을 마무리하며, 백종원 대표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철학은 무엇인가.
"쉽고 맛있게"는 대중을 위한 콘텐츠였다. 하지만 80명의 전문 조리사 앞에서, 당신은 무엇으로 그들을 평가했는가. "신기하다"는 말로 수십 년 경력의 장인을 평가하는 것이 충분한가.
당신은 조리를 보고 있는가.
서울 엄마의 너비아니에 "양반집 음식 같다"고 감탄한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것은 '왜 양반집 음식 같은지'에 대한 분석이었는가, 단순한 인상이었는가. 당신의 눈은 어디를 향해 있었는가.
당신은 어떤 심사위원이 되고 싶은가.
같은 심사석에 앉아 있으면서, 안성재와 당신의 심사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그는 기술을 분석하고, 당신은 인상을 말한다. 이 차이를 당신은 인식하고 있는가.
기술을 말하는 심사위원을 기다리며
나는 백종원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한국 외식 문화에 기여한 바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아쉬울 뿐이다. 그에게는 영향력이 있다. 수천만 명이 그의 콘텐츠를 본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한국 요리계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심사석에서도 그에 걸맞은 언어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안성재 셰프는 보여줬다. 예능적 어필 없이도 대중의 존경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진지함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조리에 대한 철학이 있으면, 인기를 쫓지 않아도 인기가 따라온다는 것을.
백종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프랜차이즈 사업가가 아닌, 요리를 깊이 이해하는 백종원. 인상을 말하는 것을 넘어, 기술을 분석하는 백종원. "신기하다"를 넘어, "이것이 당신의 철학이군요"라고 말하는 백종원. 그런 백종원을 보고 싶다.
흑백요리사 시즌3가 있다면, 그때는 다른 모습을 기대해도 될까. 조리사의 기술과 철학을 읽어내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심사위원. 안성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심사위원.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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