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영철버거가 남긴 질문: 우리는 빵으로만 사는가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5-12-15 15:58:09

사진 = [픽사베이]

[Cook&Chef = 이경엽 기자] 서울 안암동의 작은 골목, 수많은 청춘의 허기를 달래주던 ‘영철버거’의 이영철 대표가 지난 1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57세. 평생을 뜨거운 철판 앞과 기름 냄새 속에서 보냈던 그의 부고(訃告)에, 지금 온·오프라인에서는 단순한 애도를 넘어선 거대한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기자는 오늘 한 명의 자영업자가 아닌, 우리 시대가 기억해야 할 ‘위대한 조리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비록 그의 가슴에 미슐랭의 별은 없었고, 그의 주방에 최첨단 조리 장비는 없었지만, 그는 ‘조리(調理)’라는 행위가 도달해야 할 가장 숭고한 본질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수 있는가?” 이 오래된 질문은, 역설적으로 영철버거의 존재 이유를 가장 정확히 설명한다.

2000년대 초반, 그가 팔았던 1,000원짜리 버거는 영양학적으로는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조합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주머니 가벼운 고학생들에게 그것은 팍팍한 서울살이를 버티게 해주는 ‘따뜻한 위로’이자, 불안한 미래를 잠시 잊게 해주는 ‘응원’이었다. 그는 빵을 팔았지만, 학생들은 그곳에서 ‘심리적 포만감’을 샀다.

자본주의의 냉혹한 계산기로 두들겨보면 영철버거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비즈니스’였다. 원재료 값이 폭등하고 임대료가 치솟는 상황에서도 그는 1,000원이라는 가격을 미련할 정도로 고집했다. 경영학 교과서대로라면 그는 이윤을 추구하지 않은 무능한 경영자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윤’을 남기는 대신 ‘사람’을 남기는 길을 택했다. 배고픈 청춘들에게 “언제나 너희 곁에 부담 없이 있겠다”는 그 무모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자신의 마진을 깎아 학생들의 추억을 샀다.

그 진심은 결국 ‘기적’을 낳았다. 2015년 경영난으로 폐업 소식이 전해졌을 때, 학생들이 십시일반 펀딩을 모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사건은 한국 외식업 역사에 전무후무한 사례로 기록된다. 맛이 없으면 가차 없이 돌아서고, 트렌드가 지나면 잊혀지는 냉정한 외식 시장에서, 소비자가 공급자를 살려낸 이 기이한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그가 팔았던 것이 단순한 햄버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情)’과 ‘연대’였음을 증명한다.

쿡앤셰프는 이 지점에서 우리 외식 산업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화려한 파인 다이닝과 값비싼 오마카세가 넘쳐나는 미식(Gourmet)의 시대, 과연 우리는 무엇을 ‘좋은 음식’이라 정의하고 있는가.

최고급 식재료와 완벽한 테크닉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태도, 그리고 그 음식이 먹는 이의 영혼에 닿았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가치. 이를 우리는 ‘맛의 윤리’라 부르고 싶다. 조리사 이영철은 투박한 빵과 고기 패티 사이에, 거대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윤리적 맛’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는 음식이란 단순히 혀끝을 즐겁게 하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장 따뜻한 매개체임을 몸소 보여주었다.

이영철 대표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레시피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유효하다. 효율과 수익성만이 정답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그래도 따뜻한 마음 하나는 지켜야 한다”는 그의 고집스러운 철학 말이다.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비단 허기를 때울 빵조각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고단한 영혼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악수였다. 이제는 고인이 된 그의 명복을 빌며, 우리는 묻는다. 과연 지금 우리의 식탁에는, 이만큼의 마음이 올라와 있는가.

Cook&Chef /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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