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달래, 봄을 깨우는 향의 기원과 구조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2-24 23:56:39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2월 말,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 들과 밭둑에서 가장 먼저 고개를 드는 식물이 달래다. 학명은 Allium monanthum. 마늘속(Allium)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으로, 파·마늘·부추와 같은 계열이지만 향은 훨씬 가늘고 직선적이다. 잘게 썰수록 향이 사라지고, 결을 살릴수록 존재감이 살아난다. 달래는 맛보다 먼저 향으로 계절을 알린다.
우리는 언제부터 달래를 먹었는가
달래의 식용 시기를 정확히 특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삼국시대 패총 유적에서 다양한 파속(Allium) 식물의 흔적이 발견되는 점, 그리고 고려·조선 시기 문헌에서 봄철 향채류가 언급되는 점을 통해 오랜 식용 역사를 추정할 수 있다.
조선 후기 농서 《산림경제》와 《임원경제지》에는 봄철 산야 채소를 채취해 나물로 활용하는 기록이 있다. 달래가 명시적으로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야생 파속 채소”에 대한 언급은 반복된다. 《동의보감》은 달래를 별도 항목으로 길게 다루지는 않으나, 봄철 향채가 기혈 순환을 돕고 울체를 푼다고 기록한다. 이는 단순한 약성 설명이 아니라, 계절 교체기에 신진대사를 자극하는 식재료의 기능을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달래는 재배 작물이라기보다 채취 식재료였다. 밭 가장자리, 논두렁, 낮은 구릉에서 자생했으며, 이는 한식이 농경지와 산야의 경계를 식문화로 흡수해왔음을 의미한다. 달래는 ‘재배의 산물’이 아니라 ‘계절의 산물’이었다.
달래 요리의 구조 – 써는 방식이 맛을 결정한다
달래의 핵심 성분은 황화합물이다. 세포가 파괴될 때 알리신 전구물질이 효소 반응을 통해 활성화된다. 이 반응은 향을 만들지만 동시에 휘발을 가속한다. 그래서 달래는 많이 다질수록 강해지지만, 동시에 빨리 사라진다.
전통 조리에서 달래를 길게 다지지 않고 3–4cm 길이로 자르거나, 뿌리째 살려 사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특히 달래장은 간장과 결합해 향을 고정하는 방식이다. 저온 숙성 간장 속의 아미노산과 황화합물이 결합하면서 향의 지속력이 높아진다. 이는 한식이 단순한 양념 문화가 아니라 향을 보존하는 기술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대표적 달래 요리로는,
달래장: 간장·참기름·고춧가루와 혼합, 두부·조기·삶은 수육에 곁들임
달래무침: 고추장 또는 된장 소량을 더해 생채로 활용
달래된장국: 마지막 단계에 투입해 향 유지
달래비빔밥: 겨울 묵은 나물 위에 생달래를 얹어 계절 전환 강조
이 모든 조리는 “겨울 저장 음식 위에 봄 향을 얹는 구조”를 갖는다. 달래는 단독 요리가 아니라 계절 전환의 촉매다.
영양학적 특성 – 봄철 대사를 깨우는 식물
달래는 비타민 C, 칼슘, 철분, 엽산을 포함한다. 특히 알리신은 혈류 개선과 항균 작용에 관여한다. 겨울 동안 활동량이 줄고 신진대사가 낮아진 상태에서 이러한 황화합물은 체내 순환을 자극한다.
또한 달래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내 미생물 환경 개선에 기여한다. 발효 식품 위주의 겨울 식단에서 부족해질 수 있는 생채소 섭취를 보완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이는 한식이 단순히 계절을 상징적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생리적 필요를 반영한 식단 구조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외의 달래 – Allium 문화권의 비교
달래는 동아시아에 주로 분포한다. 일본에서는 ‘노비루(野蒜)’라 불리는 유사종이 봄철 산채로 소비된다. 중국 일부 지역에서도 야생 파속 식물을 봄철 채취해 무침이나 볶음으로 활용한다.
서양에서는 Allium 계열 식물 중 ‘램슨(Ramsons, Allium ursinum)’이 봄철 숲에서 채취되는 대표적 야생 마늘이다. 유럽에서는 이를 페스토나 수프로 활용한다. 그러나 한국 달래처럼 장 문화와 결합해 양념 구조를 형성하는 방식은 드물다.
이는 한식이 향채를 단독 허브로 소비하기보다, 장과 결합해 구조적 양념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달래장은 허브 소스가 아니라 장 기반의 계절 해석이다.
미식의 관점 – 달래는 선언하지 않는다
달래는 강렬한 주연이 아니다. 쌉싸름하고 날카롭지만, 오래 남지 않는다. 그래서 한식은 달래를 한 그릇의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에서 사용한다. 겨울 음식의 무게를 덜어내고, 봄을 준비시키는 조율자 역할이다.
한식은 계절을 과장하지 않는다. 눈에 띄는 색채보다 향의 전환을 선택한다. 달래 한 줌은 봄을 외치지 않는다. 대신 겨울의 잔향을 조용히 밀어낸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한식은 계절을 먹는 것이 아니라 계절의 구조를 해석하는 음식이 된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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