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주꾸미는 언제부터 봄의 맛이 되었나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4-28 17:38:31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봄이 되면 시장의 수산물 진열대에는 작은 두족류 하나가 계절의 이름처럼 올라온다. 주꾸미다. 흔히 ‘쭈꾸미’라고 부르지만, 표준어는 ‘주꾸미’다. 작고 둥근 몸, 짧은 다리, 쫄깃한 식감은 주꾸미를 봄철 별미로 기억하게 했다.
주꾸미가 언제부터 한국인의 밥상에 올랐는지를 정확히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조선 후기 어보류 문헌에는 이미 주꾸미의 이름과 생김새, 초봄에 잡아 삶아 먹었을 때의 특징이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말하는 ‘봄 주꾸미’의 감각은 연안의 식재료를 계절의 맛으로 받아들였던 오래된 식문화와 맞닿아 있다.
『자산어보』 속 준어와 죽금어
주꾸미에 대한 대표적인 기록은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 확인된다. 『자산어보』에는 주꾸미가 한자어로 ‘준어(蹲魚)’, 속명으로 ‘죽금어(竹今魚)’라 기록되어 있다. 크기는 4~5치에 지나지 않고, 모양은 문어와 비슷하지만 다리가 짧으며 몸은 문어의 절반 정도라고 설명된다.
『난호어목지』와 『전어지』에는 주꾸미가 ‘망조어(望潮魚)’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초봄에 잡아 삶으면 머리 속에 흰 살이 가득 차고, 그 알갱이가 찐 밥과 같다고 설명된다. 또 3월 이후에는 주꾸미가 여위고 ‘밥’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알배기 주꾸미’의 감각과 이어진다. 주꾸미의 머리 속 알을 밥알에 비유한 표현은 조선 후기 사람들이 이미 주꾸미를 계절의 변화와 함께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서해 연안의 식재료에서 봄의 별미로
주꾸미가 한식 식재료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연안 어업의 접근성이 있다. 주꾸미는 우리나라 전 연안에 분포하지만, 어획은 서해에 집중되어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주꾸미 전국 어획량의 약 80%가 서해에서 잡히며, 주꾸미소호, 자망, 안강망 등의 방식으로 어획된다고 설명한다. 2023년 기준 전국 대비 서해 어획량 비율은 76%로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산지성은 주꾸미가 봄철 지역 식문화와 연결되는 배경이 된다. 충남 서천과 천수만, 인천·경기 연안, 전남 일부 해역은 주꾸미 소비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조사한 자료에서는 3년간 주꾸미 낚시 포획량이 평균 2,150톤으로 확인되었으며, 이 가운데 서천·천수만이 1,400톤, 인천·경기가 400톤, 전남이 300~350톤 규모로 제시되었다. 이는 공식 어획량과 별도로 낚시 포획량을 조사한 수치이지만, 서해 연안이 주꾸미 소비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준다.
주꾸미는 멀리서 들여오는 귀한 재료라기보다, 바다와 가까운 지역에서 계절에 따라 만날 수 있는 해산물이었다. 삶고, 데치고, 무치고, 볶는 방식으로 조리되며 지역의 밥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살짝 데쳐 초장에 곁들이면 담백한 단맛과 탄력이 살아나고, 탕이나 샤브샤브처럼 국물에 익히면 부드러운 식감이 강조된다. 무침으로 만들면 산뜻한 신맛과 매운맛을 받아들이고, 볶음으로 조리하면 고추장과 고춧가루 양념이 주꾸미의 쫄깃한 살에 배어든다.
타우린과 단백질, 봄 주꾸미의 영양성
주꾸미가 봄철 식재료로 사랑받아 온 데에는 영양적 이미지도 작용했다. 주꾸미는 지방 함량이 높지 않고 단백질을 포함한 수산물이다. 대표적인 영양 성분으로는 타우린이 꼽힌다.
수산물안전정보 자료에서는 주꾸미 100g당 타우린 함량이 약 1,600mg에 이르며, 낙지의 2배, 문어의 4배, 오징어의 5배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또 주꾸미에는 불포화지방산, DHA, 필수아미노산, 철분 등이 포함되어 있고, 지방 함량은 1% 수준으로 소개된다.
이러한 영양성은 주꾸미가 봄철 원기 회복 식재료로 불려 온 배경과도 연결된다. 다만 식재료의 효능을 의학적 효과처럼 과장해 단정할 필요는 없다. 주꾸미의 가치는 특정 성분 하나에만 있지 않다. 쫄깃한 식감, 담백한 맛, 타우린과 단백질을 포함한 영양적 특성이 함께 작용하며 봄 밥상에서의 의미를 만들어 왔다.
영양적 장점은 조리 방식에 따라 다르게 드러난다. 데침, 숙회, 탕, 샤브샤브처럼 담백하게 조리하면 주꾸미 본연의 맛과 식감을 살리기 좋다. 반면 매운 주꾸미볶음처럼 고추장, 고춧가루, 당류, 기름을 함께 사용하는 조리법은 나트륨과 당, 양념 섭취량이 늘어날 수 있다.
현대 외식문화 속 주꾸미볶음
오늘날 주꾸미의 이미지를 가장 강하게 만든 음식은 매운 주꾸미볶음이다. 문헌 속 주꾸미가 초봄에 삶아 먹는 계절 해산물에 가까웠다면, 현대 외식문화 속 주꾸미는 고추장 양념과 불맛을 입은 볶음 요리로 대중화되었다.
주꾸미볶음은 한식 양념의 구조를 잘 보여준다. 고추장과 고춧가루의 매운맛, 마늘과 파의 향, 간장의 짠맛, 설탕이나 조청의 단맛, 참기름의 고소함이 주꾸미의 담백하고 쫄깃한 살에 배어든다. 주꾸미 자체의 맛만으로 완성되는 음식이라기보다, 한식의 양념 체계가 주꾸미라는 재료를 통해 드러나는 음식이다.
이 대중성은 주꾸미를 연안의 계절 식재료에서 도시 외식 메뉴로 확장시켰다. 매운맛, 쫄깃한 식감, 볶음밥으로 이어지는 식사의 흐름은 현대 외식문화 안에서 주꾸미를 더욱 친숙한 재료로 만들었다.
봄의 미식과 금어기
주꾸미를 말할 때는 맛뿐 아니라 자원 보호도 함께 살펴야 한다. 해양수산부는 주꾸미가 4~6월에 산란하고 7~10월에 성장하는 특성을 고려해 매년 5월 11일부터 8월 31일까지 포획을 금지하고 있다. 금어기는 어린 개체와 산란기의 어미 개체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국립수산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주꾸미의 수명은 약 1년이다. 주꾸미는 4월에서 6월 사이에 약 500개, 평균 200~300개의 알을 낳는다. 산란 이후 어린 개체는 성장기를 거치고, 이듬해 다시 산란에 이르는 짧은 생활사를 가진다.
이 생태적 특성은 봄 주꾸미 소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알배기 주꾸미는 봄철 미식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지만, 그 알은 다음 세대의 주꾸미가 된다. 제철의 맛을 즐기는 일과 함께, 금어기와 자원 보호에 대한 인식도 필요한 이유다.
오래된 기록과 오늘의 밥상을 잇는 식재료
주꾸미는 작은 식재료지만, 그 안에는 봄의 계절감과 연안 식문화, 문헌 속 기록, 현대 외식문화의 흐름이 함께 담겨 있다. 『자산어보』의 준어와 죽금어, 『난호어목지』와 『전어지』에 남은 밥알 같은 알의 표현은 주꾸미가 오래전부터 봄철 해산물로 인식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주꾸미는 데침, 숙회, 샤브샤브, 볶음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밥상에 오른다. 서해 연안을 중심으로 한 주요 어획 지역의 식문화, 타우린과 단백질을 포함한 영양적 특성, 현대 외식문화 속 주꾸미볶음의 대중성은 주꾸미가 한식 식재료로 자리 잡아 온 과정을 설명해준다.
다만 주꾸미는 산란기와 금어기가 맞물려 있는 수산물이다. 봄철 별미로서의 가치와 함께 자원 보호에 대한 인식도 함께 필요하다. 주꾸미를 바라보는 일은 한식 식재료가 계절과 지역, 조리법, 그리고 수산자원 관리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아 왔는지를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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