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한식 컨퍼런스] 페란 아드리아, "미식의 미래, 요리학교 아닌 '대학' 교육에 달렸다"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5-10-29 12:08:29
"10년간 '사피엔스' 방법론 연구... 한식, 고춧가루 역사부터 질문해야"
[Cook&Chef = 이경엽 기자] 세계 미식의 거장 페란 아드리아(엘불리 파운데이션)가 29일 '2025 한식 컨퍼런스' 무대에 올랐다. '미식의 미래를 설계하다(Future of Gastronomy : Developing Future Talents)'라는 주제로 강연을 맡은 그는, 15년 전 전설적인 레스토랑 '엘불리'의 문을 닫고 '엘불리 파운데이션'을 설립한 이유가 바로 '교육과 연구'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홈페이지의 56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반드시 보셔야 엘불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식을 비롯한 세계 미식이 진정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용어의 정의'와 '대학 수준의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다.
1. "음식(Food)과 미식(Gastronomy)은 다르다"
페란 아드리아 셰프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언어"라며, "미식(Gastronomy)이라는 용어 자체가 수백 년 전 프랑스에서 탄생했지만, 이 세계에는 아직 합의된 용어가 없어 서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장 먼저 '음식'과 '미식'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했다.
"저에게 음식(Food)은 생물학적인 필요와 관련된 것입니다.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죠. 동물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미식(Gastronomy)은 음식을 넘어선 경험입니다. 우리가 (박정현 셰프의) '아토믹스' 같은 레스토랑에 가는 것은 단지 먹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곳에서 즐거움을 만끽하고,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의 경험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로 미식입니다".
2. "미식은 엘리트의 사치? NO... 음식 문화의 '원동력'"
그는 미식과 외식업을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는 것을 경계했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잘못한 것 중 하나가, 미식이나 외식업을 경제적인 접근으로만 봤다는 것"이라며, "식자재 없이는 요리할 수 없듯, 와인 생산자 같은 업계에 속하지 않은 작은 생산자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페인에서 음식이 GDP의 28.8%를 차지한다면, 미식의 비중은 4.5% 정도"라며, 전체 시스템 속에서 미식의 역할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파인 다이닝'이라는 프랑스어 '오트 퀴진'에서 파생된 용어를 쓰지 말자고 제안하며, 미식이 '엘리트의식'이나 '부자들의 사치'로 치부되는 경향에 대해서도 데이터를 제시했다. 그는 "스페인에서는 미식이 부자들이 향유하는 사치라는 (좌파의) 주장이 있기도 했다"며, "실제로 스페인 국민의 5%만이 연간 6만 유로 이상을 벌고, 이 5%가 저녁 식사에 70유로 정도를 지불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카탈루냐에서는 '미식이 음식의 원동력'이라는 주장이 처음 등장했다. 미식이 없다면 (그 나라의) 음식 문화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3. 미래의 핵심은 '대학' 교육... 10개 중 6개 식당이 망하는 이유
강연의 핵심은 '교육'이었다. 그는 15년 전 엘불리 레스토랑을 닫고 파운데이션을 설립한 두 번째 이유가 바로 '교육'이라고 밝혔다.
그는 "스페인 식당 10개 중 6개가 5년 이상을 버티지 못한다"며, 그 이유로 "대부분의 레스토랑이 연간 예산 편성도 제대로 못 하는 등 비즈니스에 대한 개념 없이 운영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아드리아 셰프는 "단순 요리학교가 아닌, 대학 수준의 다학제적 미식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공부할 때 외식업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지적하며 , MACC(마드리드 컬리너리 캠퍼스), 바스크 대학 등 스페인의 새로운 대학형 교육기관을 소개했다. 그는 "제 조카가 다니는 MACC는 50% 정도가 경영학 코스"라며 "삼성 같은 기업에서 다루는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예시를 들었다.
그는 "CIA 같은 경우는 대학이 아니라 요리 학교"라고 선을 그으며, "미식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이 필수적"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4. "현상에 의문을 품어라"... '사피엔스'와 자몽의 역설
그는 10년간 시간을 쏟아부은 자신의 연구 방법론인 '사피엔스(Sapiens)'를 소개하며 '현상에 의문을 품는 것'의 중요성을 말했다.
그는 "사피엔스는 우선 현상에 대한 질문을 하고, 독단적이지 않으며, 흑백논리가 아닌 중간을 이해하고 총체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학이 뭔지 정확히 아시냐"고 물으며, "과학은 지식이며, 질서를 의미하는 '과학적 방법'이 있기에 지식이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모든 시스템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1960년대의 '시스템적 이론'을 강조했다.
그는 청중에게 '친환경 자몽'을 들어 보이며 "여기 '천연(Natural)'이 뭔지 설명 가능한 분 계시냐"고 질문했다. 한 청중이 "그대로의 상태"라고 답하자 그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생물학에서 '자연(천연)'이란 무엇입니까? '자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반대는 무엇일까요? '인공적인 것'입니다. (육종 등으로 개량된) 이 자몽은 인공적이면서 친환경 제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정의죠".
그는 "지식은 조작이 아니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라며, "여러분이 아는 게 다가 아니다. 매트릭스처럼 말이다"라고 말했다.
5. 한식을 위한 제언: "스스로의 역사를 연구하라"
그는 자신의 파운데이션이 '불리피디아(Bullipedia)' 프로젝트를 통해 현재 23권의 책을 냈고 50권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역사적으로 요리에 대해 제대로 얘기하는 책이 없어서 백과사전 같은 책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식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제가 한국에 와서 '김치에 왜 빨간 고춧가루만 사용하냐'고 질문했다. '항상 그렇게 해왔다'는 것은 답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원부터 이해해야 한다"며, "고추가 한국에 언제 들어왔는지, 그 시작은 아메리카 대륙이었다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란 아드리아 셰프는 "잘 생각하지 않으면 요리도 잘 할 수 없고, 창의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혁신을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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