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평에서 시작한 우리 술과 식재료의 궤적"… 서촌 '독도 16도' 김상훈 셰프의 고집과 철학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6-05-04 16:31:01
공산품 식재료와의 결별, 그리고 우리 술을 향한 변함없는 애정
[Cook&Chef = 이경엽 기자] "16도는 온도 16도씨를 말합니다. 16도는 가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봄으로 지나갈 때 걸쳐진 온도잖아요. 따뜻한 햇살이 있는 16도는 참 좋고 너무 좋은 날씨지만, 햇살이 없는 16도는 되게 춥고 쌀쌀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서. 한국적인 것들을 좀 따뜻하게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짓게 되었습니다."
지난 4월 30일, 한식진흥원이 주최한 '4월 한식콘서트'의 연단에 선 서촌의 한국 술집 '독도 16도' 김상훈 셰프는 떨리는 목소리 속에서도 자신의 요리 인생을 가감 없이 풀어냈다. '4평에서 시작한 독도 16도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강연에서 그는 어린 시절 요리에 마음을 두게 된 계기부터 공산품 식재료로부터의 독립을 외쳤던 첫 식당 운영기, 조리복 사업의 뼈아픈 좌절, 그리고 지금의 '독도 16도'를 일구기까지의 기록을 담담히 공유했다.
가족을 향한 마음에서 시작된 요리, '독립식당'으로 첫발을 내딛다
김상훈 셰프가 요리에 처음 마음을 두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집안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어린 마음속에 자리 잡았고, 이후 중학교 2학년이 되어 방과 후 요리 동아리에 발을 들이면서 비로소 요리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떡볶이와 샌드위치를 만들며 운동이나 게임 말고도 자신을 즐겁게 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한 그는, 동아리 선생님의 권유로 어머니들 틈에 끼어 요리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칭찬을 자양분 삼아 조리고등학교 진학이라는 꿈을 키워나갔다.
고등학교에서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여름에는 정육점에서 고기 해체를 배우며 식육 처리 기능사 자격증을 땄고, 겨울에는 바로 옆 횟집 바깥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 수돗물이 얼어 손이 부르트는 고통을 견디며 생선 손질의 기본기를 닦았다. 대학 진학 후 3학년 때 휴학을 결행한 그는 경희대학교 캠퍼스타운 조성 사업단의 '골목 상권 살리기'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생애 첫 가게인 '독립식당'을 열게 된다.
2018~2019년에 걸쳐 운영된 이 공간은 한상 차림 한식당 '독립식당', 비건 베이커리 '배지앙', 소규모 양조장 겸 주점 '술래잡기 양조장', 도자 공방 '사가요' 등 4명의 학생이 한 공간을 나누어 쓰는 '공유형 상점'이었다.
2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1년 3개월간 운영된 독립식당에는 김 셰프의 세 가지 소망이 담겨 있었다. 첫 번째는 공산품 식재료로부터의 독립, 두 번째는 대한민국에서 한식이 가지는 편견으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세 번째는 대한민국의 각 식당이 가지는 편견으로부터의 독립이었다. 그는 완도 전복으로 담근 전복장, 각 지역의 계절 채소 무침, 음성 한우, 버섯 장아찌 등을 볶아낸 '서울 떡갈비'를 선보이는 한편, 천여 개가 넘었던 우리 토종쌀 품종을 매장에 전시하고 손님들에게 그 가치를 전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
식당 운영을 마무리할 무렵에는 농사펀드가 주최한 '나의 도시 나의 농부' 행사에 참여해 네 곳의 생산자 재료로 요리를 선보였다. 이 자리에서 훗날 깊은 인연을 맺게 되는 구본일 발효의 구본일 선생을 처음 만나게 된다. 생산자가 자신의 재료와 과정을 설명하고, 손님이 그것을 듣고 맛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 경험은 요리사로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리복 회사 '루아디보'의 뼈아픈 좌절, 그리고 4평 한옥에서 다시 부른 요리의 꿈
독립식당을 마무리하고 학교로 돌아가 졸업한 그는 돌연 조리복 제작 회사를 창업했다. 요리사의 시작인 조리복을 입는 순간부터, 끝인 음식을 그릇에 담아내는 순간까지 모두 함께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 때문이었다. 프랑스어로 '미의 기준'을 뜻하는 '루아디보'라는 이름을 붙이고, 요리사도 음악가처럼 자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 트럼펫을 상징 로고로 새겼다. 디자인 비전공자였지만 2~3년간 원단 시장과 샘플실, 공장을 직접 돌며 한복 소매에서 착안한 독자적인 조리복을 완성해냈다. 작업대에 소매가 닿지 않아 위생적이면서도 활동성이 뛰어난 구조였다.
창업 경진대회를 통해 매장까지 얻었지만, 제조업의 현실은 냉혹했다. 수십, 수백 벌씩 쏟아지는 공정 중 하나만 어긋나도 모든 것을 다시 손봐야 하는 구조 속에서, 한 번은 공정이 잘못 나와 공장 사장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정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물건을 팔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구조가 슬프게 다가온 그는, 식당을 하며 손님들과 시간을 보내던 시절이 간절하게 그리워졌다.
결국 밥이라도 제대로 지어 먹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서촌 청운동에서 구한 4평짜리 한옥 공간이 지금의 '독도 16도'의 출발점이 되었다. 피아노 학원과 건축 사무소가 이웃한 자리에서, 자금이 부족해 합판 두 장으로 공간을 메꾸고 휴대용 부탄가스 버너와 생선 굽는 기계 하나로 장사를 시작했다. 외국인들은 자기 나라의 술을 잘 알고 유창하게 설명하는데, 한국 술은 분명히 훌륭하면서도 정작 우리에게는 너무 낯선 존재라는 사실이 마치 '독도'와 같다고 느껴 지은 이름이었다.
매일 새벽 4시에 눈을 떠 4시 30분이면 수산시장을 돌았다. 처음에는 소량만 사는 젊은 손님을 거들떠보지 않던 시장 상인들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성실함에 마음을 열었다. 한 번은 늦잠을 잔 그에게 단골 상인이 새벽에 전화를 걸어 "상훈아, 왜 안 나오냐. 늦잠 잤지?"라며 챙겨줄 정도였다. 손바닥만 한 갈치, 북쪽 분홍새우, 독도새우(도화새우·꽃새우·닭새우), 6kg짜리 킹크랩 등 그가 발품 팔아 구해온 재료들은 4평 주방에서 놀라운 요리로 다시 태어났다.
특히 그는 '한식당'이 아닌 '한국 술집'을 표방하며, 술을 대접하기 위해 차리는 상인 '주안상'의 형태를 코스로 발전시켰다. 최고급 금태로 부친 금태전, 거창 유기를 비롯한 공예 작가들의 그릇에 음식을 담아내고, 다채로운 전통주를 페어링하며 독도 16도만의 정체성을 세워나갔다. 파주 장단콩으로 만든 서촌 '콩밭'의 두부도 빠지지 않았다. 테이블 간격이 한 뼘밖에 안 되는 좁은 바에서 한 번은 6개월치 예약이 밀린 적도 있었다.
연말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양조장의 막걸리를 손님들에게 선물하거나, 1주년에는 큰 해산물을 사서 손님들과 함께 나눠 먹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에는 손님들이 주신 기부금으로 3,000원짜리 김치찌개를 파는 '청년문간' 신부님 측에 식사 나눔을 실천했다. 비가 오면 화장실에 물이 차올라 퍼내야 했고, 비 많이 오는 새벽에 출근하면 바닥이 물바다가 되어 있기도 한 고단한 공간이었지만, 이 청운동의 2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었다.
12평 누하동으로의 도약, 'ㅇㅇ 먹는 날'의 나눔과 구본일 발효를 향한 존경
공간에 갇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 그는 "원래 자라던 나무를 다른 곳에 옮겨 심으면 최소 3배에서 5배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현재의 누하동 12평 가게로 이전을 결행했다. 4평의 3배가 되는 이 공간에서 그는 한국 술의 특징을 온전히 살리기 위해 와인 잔의 형태를 적극적으로 빌려오는 결정을 내렸다. 와인 잔에 따라 같은 술도 풍미가 크게 달라지는 것을 직접 체험한 뒤, 각 술에 맞는 잔을 비교·선별해 손님에게 내고 있다.
또한 와인이 포도 품종과 빈티지를 세세히 기록하듯, 한국 술도 어떤 쌀, 어떤 누룩, 어떤 물로 빚었는지를 메뉴판에 꼼꼼히 적어 넣었다. 양조장 대표에게 직접 원료를 물어 정리하는 작업은 때로 불편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어떤 술을 팔 때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설명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특히 한국의 토종쌀이 천여 개가 넘는 품종이 있었고 그중 우포 농장에서 400여 개를 복원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언젠가 한국 술도 어떤 쌀 품종으로 빚었는지를 이야기하는 시대가 오기를 꿈꾸고 있다.
누하동 매장의 백미는 제철 해산물을 파격적으로 즐기는 'ㅇㅇ 먹는 날' 행사다. 여름의 민어와 덕자, 겨울의 방어, 봄가을의 잿방어와 홑게, 포항 문어, 자연산 돌돔 등 그날 새벽에 구한 재료를 평소 코스 가격(12만 5천 원)보다 낮은 7만 5천 원에 내어놓는다. "손님이 없다고 걱정하기보다는 시장에 늘 좋은 재료들이 많으니까, 그런 것들을 충분히 맛보면 좋지 않겠느냐"는 마음에서 시작된 행사다. 이런 시즌 기획으로 처음 방문한 손님이 정규 코스의 단골이 되는 일도 잦다.
양조장의 대표를 직접 초청해 술을 빚은 과정을 설명하는 '양조장 술 마시는 날' 행사도 이어간다. 뉴욕 브루클린의 '하나 막걸리'는 손님이 미국에 갈 때마다 한두 병씩 사다 준 것을 오랜 시간에 걸쳐 모아 행사를 열 수 있었다. 생산자의 이야기를 듣고 술을 맛보면 "술 너머의 사람이 보인다"는 것이 그의 경험이다.
물론 화려한 요리의 이면에는 고단한 일상이 있다. 한 달에 15박스씩 들여오는 옥돔을 쉬는 날마다 손질하고 가시를 발라내야 하며, 갑자기 전기가 끊기거나 발주한 재료가 엉뚱한 곳으로 가는 등 소규모 식당 특유의 돌발 상황과 끊임없이 부딪힌다. '흑백요리사2'에 출연하는 경험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내는 맛이 과연 맞는 맛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날이 많다고 고백했다. "어딘가에서 일을 많이 배우고 이 가게를 시작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많이 없었다"는 그의 말에는 솔직한 불안이 배어 있었다.
한편 이전 후 비워두었던 청운동 4평 공간에 대한 애착은 쉬이 놓을 수 없었다. 24절기의 느낌을 색깔로 담아낸 반상을 새로 만들고, 주 5일 운영하는 독도 16도의 쉬는 날을 이용해 독립식당을 다시 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체력의 한계에 부딪혀 얼마 전 정리를 마쳤다.
그의 요리를 떠받치는 근본적인 맛의 기둥은 구본일 발효의 장이다. 독립식당 시절 처음 만난 구본일 선생이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자신의 장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모습에 강렬한 감명을 받은 그는, 한 달에 한두 번씩 파주의 발효장을 찾아가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풀을 뽑고, 메주를 쑤며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매장 한편에는 "독도 16도의 음식은 구본일 발효의 장으로 시작되고 완성됩니다. 구본일 선생님과 같은 열정과 애정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전부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최근에는 선생에게서 직접 배운 방식으로 메주를 빚어 독도 16도의 첫 자가 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강연 끝자락에서 김 셰프는 외식업에 대한 솔직한 생각도 밝혔다. 식당 사장이라는 직업, 술집을 한다는 것에 부끄러움은 없지만, 한국에서 외식업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낡은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매장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좋은 재료를 반듯하게 내는 기본을 지키는 것이 그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요리 예술 회사, 나아가 서촌·북촌 같은 지역 문화를 엮은 파인 스테이(Fine Stay)와 호스피탈리티 산업을 선도하겠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독립식당 시절 학생 때 찍어두었던 옛 영상을 틀어 보이며 "7년 정도 된 지금, 그래도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포기하지는 않았구나"라고 말한 그는, 이렇게 강연을 마무리했다.
"공간을 확장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 공간을 더 알차게 채우는 게 저한테는 더 중요하고 그게 맞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저희 가게를 운영하면서 제일 중요한 건 손님이 기분 좋게 들어오셔서 기분 좋게 나가실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걸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늘 안정적이고 이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마음을 가지고 음식을 계속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Cook&Chef /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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