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의 열기가 빚어낸 찬란한 미식 지층, 이집트의 '코샤리(Koshary)'

심예린 기자

cnc02@hnf.or.kr | 2026-03-17 13:51:25

90년 전통의 솥 뚜껑 소리부터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 등재까지, 가장 소박한 재료로 쌓아 올린 이집트의 영혼을 맛보다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심예린 기자] 거대한 솥 위를 오가는 국자의 경쾌한 타격음, 자욱한 증기 사이로 쏟아지는 바삭한 양파 튀김의 향연. 카이로의 활기찬 시장통에서 태어난 '코샤리(Koshary)'는 이제 단순한 허기를 달래는 음식을 넘어 유네스코(UNESCO) 인류 무형문화유산이라는 고귀한 이름을 얻었다. 쌀과 렌틸, 파스타라는 이질적인 탄수화물들이 뜨거운 김 속에서 하나의 완벽한 질서를 이루는 이 요리는, 가장 소박한 재료로 구현할 수 있는 미식적 성취가 어디까지인지를 증명한다.

코샤리는 단순한 '탄수화물 폭탄'이 아닌, 이집트의 역사와 생명력이 켜켜이 쌓인 '맛의 지층'이다. 카이로의 유서 깊은 노점에서 뉴욕의 업스케일 레스토랑까지, 국경과 계급을 허물며 미식가들의 찬사를 이끌어낸 이 기묘하고도 매혹적인 앙상블. 그 층층이 쌓인 서사를 지금부터 한 겹씩 벗겨보자.

탄수화물의 파격적 앙상블 "낯설지만 완벽한 레이어링"

현재 타렉은 세계에서 가장 전설적인 레스토랑 150위 안에 든다. (출처: 게티이미지)

한국인에게 비빔밥이 있다면, 이집트인에게는 코샤리가 있다. 하지만 재료의 조합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쌀과 렌틸콩, 마카로니, 스파게티가 한 그릇에 담기고, 그 위를 바삭하게 튀긴 양파와 병아리콩이 덮는다.

코샤리의 핵심은 '텍스처의 변주'이다. 부드러운 쌀과 톡톡 터지는 렌틸, 쫄깃한 파스타, 그리고 화룡점정인 튀긴 양파의 바삭함이 입안에서 복합적인 리듬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마늘 식초와 매콤한 토마토소스가 더해지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탄수화물의 조합에 날카로운 산미와 감칠맛을 부여한다.

길거리의 철학에서 유네스코 유산으로

2025년 12월 UNESCO 인류 무형문화유산 등재

1930년대 카이로의 작은 손수레에서 시작된 코샤리는 2025년 12월, 드디어 그 역사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요리의 포용성이다.

• 역사적 융합: 인도의 '키치디(Khichdi)'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설부터, 고대 이집트 제사 음식에 뿌리를 둔다는 학설까지 다양하다.

• 변화의 유연성: 1950년대 이집트 왕정 폐지 이후 쌀값이 폭등하자 비용 절감을 위해 파스타를 섞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의 형태가 되었다. 결핍이 만들어낸 창조적 진화인 셈이다.

'아부 타렉'의 전통 vs '마지즈'의 혁신

덜컹거리는 소리와 증기는 코샤리 경험의 일부이다 (출처: 게티이미지)

현재 카이로의 외식 업계는 코샤리를 두고 흥미로운 논쟁 중이다.

전통파는 90년 역사의 전설적인 식당 '아부 타렉(Abou Tarek)'은 여전히 금속 그릇과 전통적인 양념 배합을 고수한다. 숙련된 조리사가 국자로 냄비를 탁탁 치며 리드미컬하게 재료를 담아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퍼포먼스이다.

반면, 혁신파는 업스케일 레스토랑 '마지즈(Majeez)'나 '워드 코샤리(Ward Koshary)'는 코샤리 아란치니를 선보이거나, 통밀 파스타와 유기농 콩을 사용한 건강식을 내놓는다.

이것을 전통의 파괴로 볼 것인가, 진보적 계승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우리 한식의 세계화 전략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샤리의 맛을 결정짓는 결정적 한 끝은 '타위자'라 불리는 향신료 배합과 소스 제조 공정에 있다. 아부 타렉의 홍보 매니저 아메드 샤커는 "단맛을 위해 설탕을 넣는 대신 충분히 단 토마토를 고르고, 수분 함량이 적은 양파를 엄선해 드립 방식으로 재배한 것만 사용한다"고 밝혔다. 단순한 재료일수록 원재료의 퀄리티와 소스의 산도 밸런스가 요리의 성패를 가른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코샤리는 이집트의 경제 지표이기도 하다. 가장 저렴하면서도 든든한 이 한 그릇의 가격 변동에 이집트 서민들의 삶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또한 '익숙한 재료의 낯선 조합'이 주는 힘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다. 쌀과 면을 섞는다는 파격, 그리고 식초와 고추기름으로 완성하는 강렬한 산미의 조화. 고정관념을 깬 이집트의 이 국민 요리가 앞으로 전 세계 다이닝 테이블에서 어떻게 더 우아하게 변모할지 기대된다.

Cook&Chef / 심예린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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