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600년 전 어의(御醫)가 전하는 치유의 맛, 산가요록 속 ‘어만두’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2-02 17:42:47

현존 최고(最古) 조리서가 기록한 숭어의 변신… ‘식치(食治)’의 정수가 담긴 겨울 보양식 [사진=궁중음식연구원]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만두는 흔히 밀가루 피를 떠올리지만, 조선의 식문화는 고정된 틀에 갇히지 않았다. 1450년경 세종부터 세조에 이르기까지 세 임금을 모신 어의 전순의(全循義)가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고조리서 『산가요록(山家要錄)』에는 제철 생선을 활용한 지혜로운 만두, ‘어만두(魚饅頭)’가 기록되어 있다. 최근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인 한복려 원장에 의해 재현된 이 음식은, 단순한 별미를 넘어 조선 초기 왕실의 건강 관리법이었던 ‘식치(食治, 음식으로 병을 다스림)’의 정수를 보여준다.

현존 가장 오래된 기록, 산가요록의 발견과 가치

『산가요록』은 기존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던 『수운잡방』보다 무려 80년이나 앞선 보물 같은 문헌이다. 농서(農書)이자 230여 가지의 조리법이 담긴 이 책은 조선 초기의 식생활을 온전하게 전한다. 특히 어의가 집필했다는 점은 당시의 음식이 맛을 넘어 신체의 균형을 맞추는 치료적 목적을 지니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 문헌에 실린 어만두는 밀가루 사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최고의 영양을 섭취하려 했던 선조들의 창의적 해법이었다.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겨울 숭어, 만두피가 되어 기력을 보하다

『산가요록』의 어만두는 숭어를 주재료로 삼는다. 숭어는 ‘백어(百魚)의 왕’이라 불리는 도미와 견줄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으며, 특히 산란기를 앞둔 1~2월의 겨울 숭어는 살이 쫀득하고 단맛이 깊어 어만두를 빚기에 최적이다. 숭어 살을 손바닥만 하게 얇게 포 떠서 만두피로 사용하는 방식은 밀가루 피보다 소화 흡수율이 월등히 높아, 환절기 기력이 떨어진 이들을 위한 보양식으로 제격이었다. 여기에 찹쌀가루와 녹말가루를 입혀 투명하게 쪄낸 어만두의 자태는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부드러운 식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영양의 완벽한 설계: 바다와 땅의 조화

어만두 속을 채우는 재료들 또한 치밀한 영양 설계를 바탕으로 한다. 다진 소고기와 표고버섯은 숭어에 부족한 단백질과 감칠맛을 보완하고, 데친 미나리와 숙주는 식이섬유와 비타민을 더해 영양의 균형을 맞춘다. 특히 숭어에 풍부한 EPA와 DHA 등 오메가-3 지방산은 겨울철 혈관 건강을 지키고, 껍질과 살에 함유된 비타민 B1​은 피로 회복을 돕는다. 이는 현대 미식 트렌드인 ‘고단백·저탄수화물’ 및 ‘글루텐 프리’ 식단의 선구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잊혀가는 전통, 현대의 건강법으로 부활하다

재현된 『산가요록』의 레시피에 따르면, 어만두는 쪄낸 후 냉수에 헹궈 다시 녹말을 묻혀 찌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러한 정성은 만두피의 탄력을 높이고 영양소를 가두는 고도의 조리 기술이다. 오늘날 어만두는 조리 과정의 번거로움으로 인해 점차 잊혀가는 음식이 되었지만, 탄수화물 과잉과 대사 질환으로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어만두는 선조들이 남긴 가장 지혜로운 건강식이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 600년 전 어의 전순의가 제안한 어만두 한 그릇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사를 넘어 몸과 마음을 정성껏 보살피는 진정한 미식의 의미를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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