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남자라면", 팔도가 다시 라면 판을 흔드는 이유
정서윤 기자
cnc02@hnf.or.kr | 2025-12-18 19:54:18
[Cook&Chef = 정서윤 기자] 팔도는 늘 조금 색다른 위치에 있었다. 대부분의 브랜드가 ‘뜨겁고 매운 국물’을 중심으로 경쟁할 때에, 팔도는 비빔면이라는 전혀 다른 선택지를 꺼내 들었다. 국물이 없는 라면, 여름에만 찾게 되는 계절 라면이라는 파격은 결과적으로 한국 라면 시장의 상식을 바꿨다. 팔도는 그렇게 “늘 있던 라면”보다 “없던 라면”을 만들어 온 회사다.
팔도의 시작은 1983년이다. 당시 한국야쿠르트(현 hy)는 일본 식품 기술을 도입해 라면 사업에 뛰어들었고, ‘팔도라면’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식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삼양과 농심이 양분하던 시장에서 팔도는 독특한 맛과 콘셉트로 차별화를 꾀했고, 그 결정판이 바로 1984년 출시된 팔도비빔면이었다. 매콤·새콤·달콤한 액상 스프는 라면이 반드시 뜨거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이후 팔도는 ‘도시락’, ‘왕뚜껑’처럼 용기 자체를 바꾼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라면을 하나의 문화로 확장했다. 특히 도시락은 러시아 시장에서 ‘국민 라면’으로 불릴 만큼 현지화에 성공했고, 왕뚜껑은 넓은 용기라는 단순한 변화만으로 ‘푸짐함’이라는 명확한 경험을 제공했다. 팔도의 강점은 늘 기술보다 ‘먹는 사람의 장면’을 먼저 상상했다는 점이다.
최근 팔도의 행보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비빔면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팔도는 다시 한 번 라면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쪽을 택했다. 대왕뚜껑, 제로슈거 비빔면, PB 협업 제품에 이어 이번에는 국물 라면에서도 한 단계 위를 노린다. 그 결과물이 바로 ‘상남자라면 마늘 육개장맛’이다.
상남자라면은 2012년 출시돼 누적 판매량 1억2000만 개를 넘긴 ‘남자라면’을 프리미엄으로 확장한 제품이다. 기존 남자라면이 마늘 양념 반죽이라는 명확한 콘셉트로 사랑받았다면, 상남자라면은 국물의 밀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돈골 배합을 늘려 사골 풍미를 강조했고, 동결건조 마늘 분말을 후첨 스프로 제공해 마늘 향을 마지막까지 살렸다.
건더기 구성도 달라졌다. 청경채와 표고버섯을 더해 육개장 특유의 깊은 맛과 식감을 강화했다. 단순히 맵기만 한 라면이 아니라, 묵직하고 진한 국물을 천천히 즐기는 라면에 가깝다. 편의점 기준 가격은 1700원으로 일반 봉지면보다 높지만, 프리미엄 라면 시장을 고려하면 명확한 타깃이 읽힌다.
브랜드 이미지 역시 강화했다. 팔도는 상남자라면 모델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이정후 선수를 발탁했다. 기존 남자라면의 연장선이면서도 ‘한 단계 더 강한 라면’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선택이다. 출시를 기념해 사인 배트 경품 이벤트를 준비하는 등 마케팅 역시 프리미엄 전략에 맞춰 설계됐다.
상남자라면은 17일부터 25일까지 쿠팡에서 사전 예약으로 먼저 만나볼 수 있으며, 이후 전 유통 채널로 확대될 예정이다. 팔도는 이번 제품을 통해, 국물 라면에서도 팔도만의 색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인이 라면을 사랑하는 이유는 편안하고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쁜 날엔 한 끼가 되어주고, 출출한 밤엔 가장 손쉬운 선택이 되어준다. 그 익숙함 속에서 가끔은 더 진한 국물, 더 강한 향, 조금 다른 재미를 찾게 된다. 팔도의 상남자라면은 그런 순간을 겨냥한 라면이다. 늘 먹던 라면의 자리에서, 오늘만큼은 조금 더 묵직한 한 그릇을 원할 때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선택지다. 팔도는 이번에도 라면이 놓이는 일상의 장면을 한 번 더 넓혀가고 있다.
[ⓒ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