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시장 '출하비용 보전', 농가-시장 상생의 새 모델 제시

오요리 기자

cnc02@hnf.or.kr | 2026-01-29 23:56:31

경락가 하락 시 포장·운송비 직접 지원, 기존 장려금·손실보전금 넘어선 농가 경영 안정화 모델 제시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오요리 기자] 국내 최대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농산물 가격 급락 시 출하 농가의 최소 비용을 보전하는 '출하비용 보전사업'이다. 이는 기존의 출하 장려금이나 손실 보전금과는 차원이 다른 접근으로 평가된다.

단순 출하 독려나 사후적 손실 보전을 넘어, 생산 이후 유통 과정에서 농가가 필연적으로 부담하는 포장비, 운송비 등 고정 비용을 직접 겨냥했다.

(사)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 가락시장지회는 지난 5월 28일, ‘출하비용 보전사업 업무협약식’을 개최했다. 협약식에는 서울청과, 중앙청과, 동화청과, 대아청과, 한국청과 등 5개 도매법인과 농협가락공판장이 모두 참여했다.

이는 도매시장의 핵심 주체들이 농가 경영 안정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책임을 분담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시장 논리에만 맡겨졌던 가격 변동의 충격을 완화하려는 시도이자, 생산비는커녕 유통비조차 건지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이번 협약이 단순 일회성 지원을 넘어, 농산물 유통 구조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근본적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지 식품 산업 전체가 주목하고 있다.

 ‘출하장려금’을 넘어 ‘비용 보전’으로, 패러다임의 전환

이번 사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 지원 제도와의 명확한 차별성 때문이다. 지금까지 도매법인들은 ‘출하장려금’과 ‘출하손실보전금’ 제도를 운영해왔다. 출하장려금은 물량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성격이 강했고, 손실보전금은 가격 폭락 시 일부 손실을 메우는 사후적 조치였다.

그러나 두 제도 모두 농가가 출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지출하는 고정 비용을 직접 해결하지는 못했다.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면 경락 대금으로 운송비와 포장재 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해 출하 자체가 손실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가 반복됐다.

‘출하비용 보전사업’은 이 지점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홍성호 가락시장지회장(동화청과 대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가락시장 도매법인들의 출하장려금은 법인별 연간 40억 원, 출하손실보전금은 4~5억 원 수준이다. 이번 사업을 위해 각 주체가 마련한 재원은 연간 1~5억 원 규모다.

금액만 보면 기존 제도보다 작아 보일 수 있으나, 이 사업의 차별점은 ‘독립 재원’으로 운영된다는 점에 있다. 기존 장려금 예산을 전용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 재원을 편성해 오직 농가의 출하 비용 보전에만 사용한다.

이는 도매법인들이 농가와의 상생을 위한 새로운 사회적 책임을 구체적 의지로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한종협) 역시 성명서를 통해 "기존 제도와 별도로 독립적인 재원을 확보해 운영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지며, 농업인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효과가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각 사별 맞춤형 지원, 구체성과 실효성 담보

출하비용 보전사업의 또 다른 특징은 획일적 지원이 아닌, 각 도매법인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설계다. 이는 현장의 실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서울청과는 토마토, 수박 등 20여 품목을 대상으로, 자체 기준단가 이하로 시세가 하락할 경우 한 상자당 1,500원을 지원한다. 주요 취급 품목에 대한 집중 지원으로 가격 안정 효과를 높이려는 의도다.

중앙청과는 모든 취급 품목을 대상으로 하되, ‘5개년 평균 시세보다 경락값이 70% 이상 하락’하거나 ‘재해·재난으로 출하 여건 악화’ 등 명확한 조건을 설정했다. 보편적 지원의 틀 속에서 심각한 위기 상황 대응에 초점을 맞춘 방식이다.

다른 법인들도 주력 품목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한다. 동화청과는 부추, 양파, 감자 3개 품목을, 대아청과는 2억 원의 예산으로 고랭지 배추, 무, 대파 3개 품목을 지원한다. 농협가락공판장은 1억 원으로 호박, 오이 등 4개 품목을, 한국청과는 1억 2,000만 원 예산으로 양파, 감자, 엽채류 등을 대상으로 삼았다.

권장희 서울청과 대표는 "전국 공영도매시장 중 가락시장에서 처음 도입하는 만큼 상반기 운영 상황을 점검해 하반기에는 사업을 더욱 정교하게 고도화하겠다"고 밝혀, 사업의 지속적인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유통비용’의 재정의, 책임의 범위를 명확화

이번 사업은 농가 지원을 넘어, 농산물 유통 비용 논쟁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그동안 소비자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높은 유통비용’이 지목될 때마다 유통 주체들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원석 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장은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2023 주요 농산물 유통실태조사’를 근거로 이 지점을 명확히 했다. 그는 농산물 유통을 ‘출하-도매-소매’ 3단계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도매법인이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은 출하 단계에서 발생하는 ‘출하비용’”이라며,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구역부터 명확히 하자는 취지”라고 사업 명칭의 배경을 밝혔다.

이는 도매법인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유통 과정의 한 부분으로 규정하고, 그 책임 범위 내에서 구체적인 상생 방안을 실천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 수동적 대응에서 벗어나 기능과 역할을 재정의하고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능동적 전환이다.

정부 정책과의 상호보완, 이중 안전망 구축

이 사업은 올 하반기 시행 예정인 정부의 ‘농산물 가격안정제’와 맞물려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두 제도는 농가 소득 안정을 목표로 하지만, 지원 단계와 방식에 차이가 있어 상호보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홍성호 지회장에 따르면, 정부의 가격안정제는 ‘수확 이전 재배 단계’의 생산비를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반면 가락시장의 ‘출하비용 보전사업’은 ‘수확 이후 출하 단계’에서 발생하는 유통 비용을 보전한다.

두 제도가 함께 작동하면 농가는 ‘생산’과 ‘유통’의 불확실성에 대해 이중의 안전망을 갖게 된다. 정부 제도가 과잉생산 시 생산비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고, 가락시장 사업은 최소한의 유통 비용을 지원해 ‘밑지는 출하’를 방지하는 구조다. 이는 농가의 안정적인 영농 활동을 보장하고 농산물 수급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

현장의 긍정적 반응, 상생 모델의 가능성 확인

이번 협약에 대한 농민단체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노만호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회장은 “도매시장법인과 농민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생의 동반자”라며, “농민들의 고충을 함께 짊어지는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 나아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철선 한국과수농협연합회장 역시 “기후변화와 관세철폐 등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이번 사업이 농민들의 시름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것”이라며 시의적절한 지원책이라고 평가했다.

한종협은 성명서를 통해 이번 협약이 "농업인과 도매시장법인이 함께 상생 방안을 모색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협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반응은 이번 사업이 생산자와 시장 간의 새로운 협력 모델을 제시했음을 보여준다.

외식산업과 소비자에게 미칠 장기적 영향

가락시장의 이번 사업은 단기적으로는 농가 소득 안정에, 장기적으로는 외식산업과 소비자에게 긍정적 파급 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외식업계에 중요한 것은 식재료의 안정적 수급과 가격 예측 가능성이다. 가격 폭락은 단기적으로 재료비 감소를 의미하지만, 이는 곧 재배 면적 감소와 다음 해 가격 폭등으로 이어진다. 출하비용 보전사업은 극단적인 가격 변동을 완화해 안정적 생산 기반을 제공한다.

이는 외식업체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메뉴를 계획하고 원가 관리를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기여한다. 소비자 역시 생산 기반 안정을 통해 간접적 혜택을 본다. 공급 안정은 특정 품목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을 줄여 장바구니 물가 안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결론적으로, 가락시장의 ‘출하비용 보전사업’은 농산물 유통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도매법인이 시장 중개자를 넘어 생산자의 경영 리스크를 분담하는 파트너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 실험이 성공적으로 안착해 전국으로 확산된다면, 한국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건강한 식품 생태계를 구축하는 초석이 될 전망이다.

Cook&Chef / 오요리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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